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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장세자]묘소도감의궤([孝章世子]墓所都監儀軌)

자료명 [효장세자]묘소도감의궤([孝章世子]墓所都監儀軌) 저자 묘소도감(墓所都監) 편(編)
자료명(이칭) 묘소도감의궤(墓所都監儀軌n1-2책) , 墓所都監儀軌 저자(이칭) 墓所都監(朝鮮) 編 , 묘소도감(墓所都監 編)
청구기호 K2-2314 MF번호 MF35-53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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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28(영조 4년)
· 청구기호 K2-2314
· 마이크로필름 MF35-53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묘소도감(墓所都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5.2 X 32.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35.7×26.2㎝
· 인장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奉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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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28년(영조 4) 孝章世子(후에 眞宗)의 墓를 조성하기 위한 전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하단에 冊次가 ‘上ㆍ下’로 표기되어 있다. 앞표지의 우측에는 ‘雍正六年戊申十一月 日 英宗四年’이라는 기록이 있다. 書根題는 ‘墓所都監儀軌 孝章墓’이다. 본문은 印札空冊紙에 12行 26字로 筆寫되어 있다. 目錄이 있는 제1장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본문에 ‘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728년 11월 16일 亥時에 昌慶宮 進修堂에서 영조의 왕세자인 효장세자(1719~1728)가 10세의 어린 나이로 죽자 墓所都監의 설치하고 묘[孝章墓]를 조성하는데, 그 전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효장묘1776년(정조 즉위)眞宗으로 추존되면서 永陵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삼릉 안에 있다.
모두 ‘上ㆍ下’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上冊은 座目을 비롯하여 啓辭, 移文, 來關, 甘結 등이 문서별로 정리되어 있으며, 下冊은 三物所, 造成所, 爐冶所 등 관아별로 정리되어 있다. 권미에 의궤와 書啓, 論賞이 수록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실제로는 備忘記와 甘結秩, 移文秩 등으로 정리되어 있다. 상책과 하책 각각의 뒤표지 안쪽에 1919년 1월에 改修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장서각에는 본 의궤 외에 같은 이름의 『묘소도감의궤』 2종(K2-2312, K2-2313)이 더 소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K2-2313은 본 의궤의 상책과 내용이 같으며, 제본 상태로 보아 어람본으로 추정된다. 그 외 사항은 『묘소도감의궤』(K2-2313)의 해제 참조. 한편, K2-2312는 숙종 대의 왕세자빈인 端懿嬪 沈氏(후에 端懿王后)의 묘를 조성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묘소도감의궤』(K2-2312)의 해제 참조.
상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1728년 11월 16일 효장세자가 죽자 같은 날 바로 영의정 李光佐도제조로, 이조참판 宋寅明 행사직 金取魯제조로 임명하여 묘소도감을 설치하였다. 그달 19일에 도감사목별단과 都監各所監造官別單을 마련하였다. 이를 보면, 都監處는 吏曹에 設局하였다. 都石手와 莎土匠, 목수 등은 먼저 불러들여 일을 하였고, 募軍과 僧軍 등을 役軍으로 부리도록 하였다. 당상 낭청이 墓所 및 부석소 등을 출입할 때는 肅拜를 하지 않으며, 필요한 잡물 중 자질구레한 물건은 도감에서 바로 取用하였다. 도감수직군은 고을의 신실한 자로 정하도록 하였다. 11월 21일 계사에는 각양잡물도합별단이 실려 있는데, 甕家와 丁字閣 등을 조성할 때의 각종 물종과 물량 및 공급처가 기록되어 있다.
墓山을 택정하기 위한 보고가 많은데, 南原君과 도감당상이 地官을 거느리고 각각의 현장에 나아가 살펴보고 그 타당성 여부를 보고하였다. 11월 26일에는 健元陵 左邊, 건원릉穆陵 사이, 崇陵 右邊, 順陵 좌변 등이 후보지로 보고되었는데, 그 가운데 순릉 좌변으로 결정되었다. 12월 19일의 전교에서는 공장 620명, 모군 920명, 승군 750명 등을 동원하였는데 추운 겨울이므로 얼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하책은 각 관아별로 한 일을 정리해 놓았다. 삼물소는 11월 20일의 기록을 시작으로 金井機와 甕家 및 각종 假家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물품과 물량 등을 정리하였다. 조성소는 정자각과 齋室, 攢室, 香大廳, 御井, 수라간 등의 조성과 관련된 사항을 기록하였다. 그 밖에 각종 철물을 다룬 노야소와 석물을 만든 대부석소, 소부석소를 비롯하여 보토소, 별공작, 분장흥고, 燔瓦所, 輸石所 등의 관련 문서가 관아별,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다.
권미에 1729년(영조 5) 2월에 작성된 비망기가 첨부되어 있다. 묘소도감 도제조 영의정 이광좌에게 鞍具馬를 상으로 내린 것을 비롯하여 원역과 공장에게 米, 布를 나누어 준 논상이 정리되어 있다. 아울러 이문질에는 본 의궤를 의정부예조, 춘추관적상산성에 각각 분상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감결질에는 1729년 2월 어람본을 제작하는 과정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 왕세자의 묘를 조성하는 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영조효장세자의 묘 조성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집필자

김세은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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