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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릉사례(明陵事例)

자료명 명릉사례(明陵事例) 저자 민영국(閔泳國)
자료명(이칭) 明陵事例 저자(이칭) 閔泳國(朝鮮) 編
청구기호 K2-2306 MF번호 MF35-2184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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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98(광무 2년)
· 청구기호 K2-2306
· 마이크로필름 MF35-218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민영국(閔泳國)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9.8 X 29.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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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명릉의 수입과 지출 사항을 기록한 사본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事例’이다. 표지 서명 우측에 ‘事例’보다 작은 글씨로 ‘明陵’이라고 적혀 있다. 표지 서명 하단에 冊次가 ‘乾’으로 표기되어 있다. 앞표지의 우측에는 ‘光武二年(1898)三月’이라는 墨書가 있다. 書腦 하단에는 ‘共二’라는 기록이 있다. 본문은 烏絲欄에 11行 字數不定으로 筆寫되어 있다. 제4장과 제6장에 籤紙가 있다.
체제 및 내용
1898년(광무 2) 봄에 쓴 「明陵續謄錄序」와 명릉의 수입 지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장의 「명릉속등록서」 사이에 瑞興抱川에서의 수입 및 지출 기록 한 장이 잘못 편집되어 있다. 명릉1701년(숙종 27)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1667~1701)가 승하하면서 조성되었고 후에 숙종(1661~1720)과 인원왕후 김씨(1687~1757)가 묻혔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안에 있다. 장서각에는 같은 이름의 『明陵事例』(K2-2307)가 소장되어 있는데, 필체는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본 문헌의 「명릉속등록서」는 민영국이 쓰고[識], ‘庚寅祭器點考’와 ‘庚辛兩年加結條’를 기록한 종이가 관련 항목에 첨부되어 있다. 반면, K2-2307본의 「명릉속등록서」는 본 문헌의 서문과 거의 비슷하지만 李相郁이 맡았다[職]고 기재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지출 항목이 약간 더 기재되어 있다. 본 문헌의 官況秩의 기록 끝에 민영국의 직책은 ‘’이고, 이상욱은 ‘참봉’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명릉사례』(K2-2307)의 해제 참조.
「명릉속등록서」를 살펴보면, 숙종인현왕후, 인원왕후가 잠든 명릉에서는 5차례의 節享과 3차례의 忌辰祭 및 각종 봉심과 摘奸 거행 등 일이 매우 많은데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위답 20石 18斗落을 내려주고, 元軍 80명 등을 보충해 주며, 약간의 復戶와 位田도 더해 주었다고 하였다.
면을 달리하여 총수입과 각종 지출 항목을 비롯하여 位田秩, 官況秩 등이 정리되어 있다. 명릉의 총수입은 서흥포천의 香炭錢 수입이 약 662냥이었고, 이 가운데 제향 비용으로 약 284냥을 사용하였다. 또한 高陽, 東山, 花田, 德隱 등에 있는 위전 수입이 약 2,404냥이었는데, 書員, 庫直, 兩山直, 火木軍 등의 인건비로 지급되었다. 관원에게는 매일 백미 4승, 남초값 2푼을 주었고, 겨울에는 땔감값으로 6냥씩 지급하였다. 권미에 서흥 향탄과 兎山 위토 수입의 分兒記가 기재되어 있다. 서흥의 향탄 수입은 翼陵의 관리에도 쓰였고, 위토 수입은 인건비로 지급되었다. 익릉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1661~1680)의 무덤으로 명릉의 북쪽에 있다.
특성 및 가치
명릉 관리를 위한 재정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다.

집필자

김세은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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