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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릉의궤(各陵儀軌)

자료명 각릉의궤(各陵儀軌) 저자 장례원(掌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각릉의궤(各陵儀軌n1-3책) , 各陵儀軌 저자(이칭) 장례원 , 掌禮院(朝鮮) 編 , 장예원(조선) 편(掌禮院(朝鮮)編)
청구기호 K2-2275 MF번호 MF35-555~556
유형분류 고서/의궤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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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97(광무 1년)
· 청구기호 K2-2275
· 마이크로필름 MF35-555~556
· 기록시기 1897~1910年(光武 1~隆熙 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 유일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장례원(掌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53.0 X 35.6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3책(冊)
· 판식 반곽(半郭) 43.4×30.5㎝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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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대한제국기 각 陵의 제사에 사용된 祝式들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불분권 3책의 필사본이다. 표지 서명은 ‘各陵儀軌’이다. 권수제가 따로 없으므로 서명은 표지 서명을 근거로 하였다. 오사란에 내용을 필사하였다. 본문 중간에 백색 혹은 황색 제첨지를 붙여 내용을 일부 교정한 흔적이 있다. 장황은 선장으로 표지는 황색 비단을 사용하였다. 앞표지에는 백색 비단으로 제첨하고 ‘各陵儀軌’라고 묵서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고종 光武年間에서 隆熙年間 사이에, 종묘 정전영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의 각 陵에서 제사 지낼 때 신에게 올렸던 祝文의 서식들을 모아 掌禮院에서 제작한 책이다. 3책으로 되어 있는데, 제1책은 文禧廟四仲朔祭祝式, 各陵節祭, 各陵淸明祭祝文, 各陵忌晨祭祝文으로 구성되었고, 제2책은 各陵節祭의 내용만이 순서가 뒤바뀌어 수록되어 있으며, 3책은 各陵淸明祭祝文, 各陵忌晨祭祝文으로 구성되었다. 동일한 제향의 축식에도 대상이 되는 능이나 축문 속의 명칭이 다른 것으로 보아 제3책 모두 제작 시기가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각 책 안에서도 삭제와 추록의 흔적이 심하여 처음 편집된 시기와 최종 정리된 시기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무덤은 묘주의 신분에 따라 陵, 園, 墓로 구분되었는데 능은 왕과 정비의 무덤을 말한다. 조선 전기에는 이들 諸陵에 사시, 속절, 삭망 외에도 일이 있을 때마다 고유제를 올렸고, 조선 후기에는 기신제가 더해졌다. 그런데 본 의궤는 절제, 청명제, 기신제의 축식만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고종1896년(고종 33) 양력 반포 후에 속절의 하나인 한식 제사를 청명에 지내도록 한 것이나 1908년(융희 2) 일본 통감부가 ‘개정한 제사 제도[享祀釐正]’를 통해 1년 1차와 기신의 제사만(祧遷한 왕은 1년 1차만)을 지내도록 축소한 것과 연관이 깊다.
제1책의 文禧廟四仲朔祭祝式은 내용이 중단된 殘缺文인 데다 문희묘고종 당시 창의궁 궁내에서 문효세자를 모시던 사당의 축식이어서 각릉의궤에 포함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데, 착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各陵節祭는 不遷位와 고종 위로 4대까지 종묘 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의 능에 대한 축식이다. 태조健元陵에서 철종철인왕후睿陵에 이르기까지 27개 능에 올리는 축식이 기록되어 있다. 축문의 형식은 건원릉의 경우, “維光武某年歲次某甲某月某甲朔某日某甲 孝玄孫 諱[年老傳重使子 諱] 謹遣臣 敢昭告于 太祖⊙⊙至仁啟運應天肇統廣勳永命聖文神武正義光德⊙⊙ 伏以節序易流當玆令辰冞增感慕聊藏明禋 謹以淸酌庶羞式陳明薦尙饗”이다. 즉 제향을 올리는 시일의 연호와 세차 및 월일, 제사를 올리는 主祭者와 제사 대상의 관계 및 주제자의 이름, 주제자의 시호와 묘호와 왕위(황위), 엎드려 사모의 정으로 삼가 술과 제수를 올리니 흠향하시기를 아뢴다는 축원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연호가 光武임이 선명한데도 나머지 축문들에는 대부분 검게 지워져 있고, 주제자에서 괄호 부분 [年老傳重使子 諱]는 추록한 것이며, 태조에서 광덕까지의 칭호에서 중국에서 받은 시호인 ‘康憲’과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추존된 ‘皇帝’의 4글자는 검게 지워져 있다. 또한 元陵영조弘陵정성왕후健陵정조효의왕후의 축문 사이에 隆陵장조(장헌세자)에 대한 축식이 작은 글씨체로 삽입되어 추록되었다. 태조의 황제 추존과 장헌세자장조 추존 시기가 1899년(광무 3)이므로, 의궤는 그 이전에 처음 제작되어 그 이후에 추록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各陵淸明祭祝文은 태조의 조상인 穆祖德安陵에서 철종예릉까지 45개의 능에 대한 제사 축문이고, 各陵忌晨祭祝文은 절제의 능에서 기신일에 올리는 제사 축문이다. 축식은 청명제는 앞서의 절제와 같고, 기신제의 경우 ‘易流當玆令辰冞增感慕聊藏明禋’을 ‘光陰易逝諱晨載臨聊藏菲儀式表微忱’으로 바꾸는 것 외에 나머지 서식은 모두 같은데, 광무의 연호와 황제의 칭위를 지우고 괄호 안의 내용을 추록한 것 또한 거의 같다.
제2책은 맨 앞장에 효정왕후 일부와 睿陵에 대한 축문이 있고 이어서 英陵세종부터 景陵헌종까지에 대한 축문인데, 영녕전에 모신 추존왕과 祧遷位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절제처럼 종묘 정전에 모신 신위가 대상이다. 맨 뒷장이 맨 앞장으로 뒤바뀐 것이다. 장조隆陵영조홍릉정조건릉 사이에 차례대로 적혀 있고, 중국에서 받은 시호는 없으나 연호가 광무로 적혀 있다. 또한 세종에서 철종까지 모두 ‘太皇帝’라는 명칭이 추록되었다. 1899년 이후에 제작되고 그 이후에 다시 추록이 이루어진 것이다. 축식도 절제와 같으므로, 제1책 이후에 제작된 各陵節祭의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제3책은 各陵淸明祭祝文과 各陵忌晨祭祝文으로 구성되었다. 대부분 연호 없이 ‘維某年歲次’로 시작되고 주제자도 제위의 칭호가 없거나 중종처럼 대왕으로 되어 있다. 제2책의 절제에 이어 청명제와 기신제만 수록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제2책 이후에 일제의 제사 축소 정책을 반영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유교 국가 조선이 의례적 대응을 통해 근대를 직면하는 방식과 동시에 대한제국을 의례의 축소와 변형을 통해 장악해 가는 외세의 침탈 과정을 실증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장서각 유일본이다. 各陵淸明祭祝式, 各陵忌晨祭祝式으로 구성된 K-2276의 各陵儀軌와 비교할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五禮儀
純祖實錄
純宗實錄附錄
春官通考
이욱, 「근대 국가의 모색과 국가 의례의 변화」, 『정신문화연구』 27, 2004.

집필자

박례경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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