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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대왕정성왕후]부묘도감의궤([英宗大王貞聖王后]祔廟都監儀軌)

자료명 [영종대왕정성왕후]부묘도감의궤([英宗大王貞聖王后]祔廟都監儀軌) 저자 부묘도감(祔廟都監) 편(編)
자료명(이칭) 祔廟都監都廳儀軌 , 1778년 부묘도감도청의궤(祔廟都監都廳儀軌) , 부묘도감도청의궤(祔廟都監都廳儀軌) 저자(이칭) 부묘도감(祔廟都監 編) , 祔廟都監(朝鮮) 編 , 부묘도감
청구기호 K2-2239 MF번호 MF35-538
유형분류 고서/의궤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祔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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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서비스분류 종묘자료
· 작성시기 1778(정조 2년)
· 청구기호 K2-2239
· 마이크로필름 MF35-53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부묘도감(祔廟都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3.5 X 32.8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4.0×26.0㎝
· 인장 壹品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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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78년(정조 2) 英祖의 국상을 마치고 영조貞聖王后, 眞宗, 孝純王后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宗廟都監儀軌’이고 서근제는 ‘祔廟都監儀軌’이다. 권수제는 ‘祔廟都監都廳儀軌’이다. 인찰공책지에 내용을 필사하였고 본문 안에는 채색도가 있다. 장황은 선장이다. 목록이 있는 장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본문에 ‘壹品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국상을 마친 후 후계 왕이 선대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례를 祔廟 의식이라고 한다. 부묘 의식은 五禮 가운데 凶禮에 속하지만 국가에서는 왕이나 왕비를 떠나보낸 오랜 슬픔에서 벗어나고, 왕조의 선왕들과 함께 제향의 대상으로 모시는 의례로 흉례에서 吉禮로 전환되는 의식이었다. 국왕의 부묘 의식은 3년상을 마치고 이루어졌다. 반면 국왕의 생전에 세상을 떠난 왕비의 위패는 3년상을 마친 후에도 魂殿에 봉안되었다가 국왕이 부묘될 때를 기다려 함께 모셔졌다. 3년상을 마친 후 혼전에 모셔져 있던 영조의 初妃인 정성왕후의 신주도 영조의 신주와 함께 부묘되었다. 또한 영조의 부묘 의식은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를 추숭하고 부묘하는 의식과 함께 준비되었다. 임오화변으로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영조는 세손을 효장세자의 후사로 삼아 왕위를 승계하도록 했고, 정조 즉위 후 이 조치에 따라 효장세자와 세자빈을 각각 진종효순왕후로 추존하여 부묘하였다.
영조조선 제21대 왕으로서, 이름은 이다. 1694년(숙종 20) 숙종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99년(숙종 25) 연잉군에 봉해졌고, 경종이 즉위한 후인 1721년(경종 1)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1724년(경종 4) 즉위하여 52년간 재위하였다. 능호는 元陵이다. 정성왕후달성부원군 徐宗悌의 딸로 1704년(숙종 30) 연잉군과 혼인하여 달성군부인으로 책봉되었고, 1721년 세제빈이 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으며 1757년(영조 33) 세상을 떠났다. 능호는 弘陵이다. 진종영조정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725년(영조 1)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728년(영조 4) 세상을 떠났다. 효순왕후 조씨조문명의 딸로, 1727년(영조 3)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735년(영조 11)에 현빈에 봉해졌다. 1776년(영조 52) 承統世子嬪의 이름을 받았고, 정조 즉위 후 효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진종효순후의 능호는 永陵이다.
영조의 부묘 의식은 1778년(정조 2) 5월 2일에 거행되었다. 이보다 앞선 4월 19일에 정성왕후의 혼전에 책보를 올리고, 신주를 고치는 의식을 거행했다. 부묘 의식의 총책임자인 都提調우의정 徐命善이었고, 提調李景祜, 具允玉, 洪樂性, 李徽之 등이 참여하였다. 부묘도감 都廳에서는 예행연습[習儀] 및 부묘 의식 준비와 관련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고, 각 행정 기관의 업무 협조를 받는 등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상이 끝난 후에 부묘 의식을 마치고 나면 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고 중전을 책봉하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여러 의식을 함께 준비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정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부묘도감의 사무는 세 부서에서 나누어 맡았다. 우선 一房에서는 부묘 의식에 사용할 轝輦, 香亭, 床卓, 寶欌, 冊欌 등을 마련하는 일을 담당했다. 이 중 가마와 책장을 제작 및 수리하는 일이 가장 컸다. 통상적인 왕의 부묘 의식에는 신주를 싣는 神輦, 神轝, 신연 앞에 서는 향로를 실은 香亭子, 책봉 및 시호 관련 寶冊을 실을 腰輿와 彩輿가 필요했다. 二房에서는 영조과 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부묘할 때 종묘실에 배설할 기물, 상탁, 褥席, 부묘 행렬에 필요한 국왕 및 왕비 儀仗 등의 제작·수리를 담당하였다. 三房에서는 龕室, 神榻 및 제향에 필요한 祭器 등의 주조를 맡았다. 영조의 영정을 永禧殿에 옮겨 봉안할 때 필요한 儀物도 각방에서 나누어 담당하였고, 각방 의궤 말미에 부록하였다. 별공작에서는 도청과 각방의 가가 및 곳간을 짓고 각종 소요 물품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다. 수리소에서는 종묘 공신당의 추가로 건립하고 수리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의궤 서두에 內題가 있고, 부묘 일자를 기록하였다. 이어 부묘도감의 일을 맡은 관원의 명단인 座目을 수록하였다. 다음으로 도감의 운영 원칙을 적은 都監事目이 나온다. 啓辭秩에는 1778년(정조 2) 2월 20일부터 4월 20일까지 도감에서 왕에게 올린 계사와 비답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移文秩, 來關秩, 稟目秩, 甘結秩에는 인력 동원이나 물자 조달을 위하여 관련 관서들이 주고받은 문서들이 수록되어 있다. 禮關秩에는 예조에서 부묘도감에 보내온 문서와 처분 등이 수록되어 있다. 徽寧殿冊寶詣闕內入儀, 冊寶內出詣徽寧殿儀, 親臨徽寧殿上冊寶儀, 徽寧殿改題主儀, 英宗大王神主貞聖王后神主詣宗廟儀, 眞宗大王神主孝純王后神主詣宗廟儀, 英宗大王貞聖王后眞宗大王孝純王后祔廟儀, 題配享位版致祭儀 등 부묘 의식의 구체적인 절차를 기록한 儀註가 수록되어 있다. 이어 의궤 제작과 관련된 사실을 기록한 의궤사목과 부묘 의식의 준비 및 의례에 참여한 인원의 명단과 이들에 대한 포상 내역을 기록한 비망기가 실려 있다. 다음에는 각방 의궤가 수록되어 있다. 각 방별로 담당한 일의 내역과 담당자들의 명단을 적고, 작업의 진행 과정, 소요 물품, 공장의 명단 등을 기록하였다. 각방 의궤에는 기물들의 채색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 1방의궤 끝에 신주를 모시고 종묘로 가는 행렬을 그린 48면의 채색 班次圖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윤방언, 『朝鮮王朝 宗廟와 祭禮』, 문화재청, 2002.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집필자

김지영·규장각한국학연구원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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