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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수복청일기(宗廟守僕廳日記)

자료명 종묘수복청일기(宗廟守僕廳日記) 저자 이왕직(李王職) 편(編)
자료명(이칭) 1945~1946년 종묘수복청일기(宗廟守僕廳日記) 저자(이칭) 이왕직 , 李王職編 , 종묘 수복청
청구기호 K2-2185 MF번호 MF16-291, 2913
유형분류 고서/일기 주제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기록유산 장서각자료센터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기록유산 장서각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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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서비스분류 종묘자료
· 작성시기 1945
· 청구기호 K2-2185
· 마이크로필름 MF16-291, 291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이왕직(李王職)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5.3 X 18.9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3×15.8㎝
· 인장 宗廟署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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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45년 1월 1일에서 1946년 9월 26일까지 종묘 守僕廳에서 매일 있었던 일을 기록한 日誌 형식의 글이다.
서지사항
총 1책의 필사본이다. 표지 서명은 ‘守僕廳日記’이다. 권수제는 따로 없으므로 서명은 내용을 근거로 하였다. 舊 앞표지에는 ‘昭和二十年(1945)度 第十九号’라고 묵서되었다고, ‘宗廟署章’이 날인되었다. 본문은 판하구에 ‘李王職’이라고 인쇄된 주색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으며 서미에 내용 일부를 부기하는 경우가 있다. 장정은 선장으로 재장되었다. 뒤표지 이면에 1972년장서각에서 재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체제 및 내용
수복청은 조선시대에는 ‘守僕房’으로 불렸고, 종묘 정전의 東門 담장에 잇대어 있었다. 수복방은 그야말로 종묘를 지키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수복청에 근무한 사람들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 방식은 연, 월, 요일, 날씨, 음력 날짜를 먼저 기입한 뒤 그날 수행한 일을 기록하는 형식이었다. 또한 頭註에 그날 있었던 중요한 일을 간략하게 기록하여 열람이 편리하도록 해 놓았다. 1946년은 해방 뒤이므로 ‘丙戌’로 표기하였다.
수복청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일은 廟殿의 外面을 봉심하는 것이었고 대체로 ‘安寧’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 수복청을 떠나는 이에게 송별금을 준다거나 경계경보 발령과 해제, 新任 使丁, 祭器의 修整, 薦新, 황족에 대한 존칭 및 각 宮號의 회복, 大祭에 들어가는 消耗品과 물량, 祭官의 성명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중 경계경보의 발령과 해제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마 1945년이라는 시기를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임 사정에 일본 이름이면서 한국적인 이름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池田七龍’이라는 이름이다. 창씨 개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황족에 대한 존칭과 궁호의 회복은 대표적으로 순종의 계비였던 純貞孝皇后 尹氏(1894~1966) 관련 기록이 주목된다. 1946년 3월 11일 날짜에 ‘李王妃’에서 ‘皇后’로 회복되어 ‘李王妃殿下’에서 ‘皇后陛下’로 칭호가 바뀌었으며, 거처하던 樂善齋를 ‘皇后宮’으로 한다고 하였다.
수복청이 종묘에 딸린 부속 건물인 만큼 종묘 관련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종묘가 국가 사당인 만큼 여기에서 지내는 제사가 매우 중요함은 물론이다. 제사를 지낼 때 어떤 물품이 들어가며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주로 『宗廟儀軌』(奎 14220)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해방 전후 종묘영녕전의 祭物 수량,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종묘수복청일기』에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1945년1946년에 종묘 대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특이하다. 1945년 8월 8일 해방 직전 종묘 추향대제를 섭행할 때의 獻官이 禮式課長 李謙聖이었다. 그런데 영녕전 추향대제는 ‘森山⊙吉’이라는 일본 성명을 가진 자가 헌관이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고 난 뒤 1946년 춘향대제 때 종묘영녕전의 祭官은 모두 한국인 성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이가 있다. 해방 전 종묘 제관 중 大祝을 담당한 이의 이름이 ‘國本光壽’였는데 해방 후 영녕전 제관 중 대축을 담당한 자의 이름이 ‘李光壽’였다. 이는 해방 전 제관 가운데 등장하는 일본 이름이 창씨 개명한 이름임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종묘 의례에 일본인들의 개입 여부는 큰 논란이 일 만한 일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 수복방 관련 기록 중 그곳 근무자들의 수행 업무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문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시기는 다르지만 그런 점에서 『종묘수복청일기』가 갖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그뿐 아니라 해방 전후인 1945년1946년의 시대 배경, 종묘영녕전의 상황, 제물, 제관을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종묘영녕전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宗廟儀軌』(奎 14220)
春官通考』(奎 12272)
春官通考』(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영인본, 1975)
강문식·이현진, 『종묘와 사직』, 책과함께, 2011.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이현진, 「종묘 제례」, 『조선의 국가 제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집필자

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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