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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관통고반차도(春官通考班次圖)

자료명 춘관통고반차도(春官通考班次圖) 저자 예조(禮曹) 편(編)
자료명(이칭) 春官通考班次圖 저자(이칭) 禮曹(朝鮮) 編
청구기호 K2-2144 MF번호 MF35-21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通禮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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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2144
· 마이크로필름 MF35-21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예조(禮曹)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6.0 X 24.1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3.3×16.0㎝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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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88년(정조 12)에 편찬된 『춘관통고』 권67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따로 떼어 예조에서 묶어 올린 것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春官通考班次圖’이다. 본문의 판심 상단에는 ‘春官通考’를, 하단에는 ‘禮曹上’을 붓으로 썼다. 본문 판식은 四周單邊으로 괘선을 그어, 小字의 글씨로 班次를 기록한 도형이다. 책 수는 1책 10장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藏書閣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춘관통고』는 1788년(정조 12)에 편찬되었는데, 이 반차도 제작시기와의 선후 관계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이 반차도의 필사 상태로 보아 『춘관통고』에 비해 사자관이 매우 정성스럽게 쓴 것만은 분명하다.
반차도의 내용 구성과 체제는 『춘관통고』와 동일하다. 그 종류는 續儀城內動駕排班之圖, 今儀城內動駕班次圖, 續儀城外動駕排班之圖, 今儀城外動駕班次圖, 今儀社稷動駕班次之圖, 今儀逌覲門動駕班次之圖, 今儀動駕前後鼓吹之圖, 今儀山陵動駕班次之圖 등 모두 8종이다. 도명 앞에 붙어 있는 ‘속의’는 1744년(영조 20)에 편찬한 『국조속오례의』를 가리키며, ‘금의’는 정조 당대에 시행하는 의절을 가리킨다. 따라서 국왕이 성내외를 거둥할 때의 반차도는 새로 개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새로 시행되는 반차도는 사직과 유근문 및 산릉에 거둥할 때의 행렬 차례이며, 하나는 임금이 거둥할 때 앞뒤에 위치하는 고취의 반차도이다. 유근문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의 북문이며, 이를 통해 日瞻門으로 들어갔다. 일첨문은 이곳을 매일 바라본다는 효자의 마음으로 정조가 지은 이름이다. 그러므로 유근문의 거둥은 곧 경모궁의 거둥을 말한다.
도명에 있어서 『국조오례의』와 『국조속오례의』에서는 배반도라 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이를 반차도로 고쳤다. 배반이나 반차는 ‘路次排班’이란 용어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길을 행진하는 사람들의 차례와 줄의 배치를 가리키는데, 배반도에서는 줄의 차례의 성격보다는 특히 시위를 담당한 군병들의 위치를 문장으로 설명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배반도에 근거한 반차는 여러 혼선을 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고자 행렬 참가자들의 정확한 위치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실제에 가까운 명칭으로 바꾼 것으로 사료된다.

집필자

임민혁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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