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홈으로 > 자료분류 > 주제분류

서화2(書畵2)

자료명 서화2(書畵2) 저자 미상(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 서지정보 서지 xml

닫기
한글문서명서화2
한자문서명書畵2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미상
수취(한자)미상
발급(한글)미상
발급(한자)미상
찬자(한글)미상
찬자(한자)未詳
발급목적[晦齋先生祠](楷書大字)
간행년(서기력)미상   미상 -
유형고문서
크기33x38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경상북도
소장처2경주시
소장처3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MF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김새미오
해제작성일2002-07-10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書畵2
김새미오
【정의】
晦齋先生祠. 회재 이언적선생 사당의 편액글씨로 추정됨.
【내용】
[주제]
[용어]
[인물]
晦齋 李彦迪(1491-1553)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본관 여주. 자는 復古 호는 晦齋, 紫溪翁. 그가 자호를 회재라고 한 것은 회암의 학문을 따른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기론의 주리론적 견해로서 理先氣後說과 理氣不相雜說을 강조했고, 후에 이황으로 계승되는 영남학파 성리학의 선구가 되었다. 도학적 수양론을 경세의 근본으로 삼았다. 1610년(광해군2)에 문묘에 종사되었고, 경주의 옥산서원 등에 배향되고 있다. 시호는 文元이다.
[지명]
【특징】
한 글자 한 글자는 공간이 적어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체를 본다면 호방하고 힘있는 구성을 느낄 수 있다.
【비고】
강계부에도 회재선생사가 있다. 회재 이언적은 1547년 윤원형 일당이 조작한 良才 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박승임(1517-1586)이 지은 「江界府祠廟記」에 따르면 회재는 유배 7년 만에 죽었고, 그 후 1576년(만력병자)에 熙川 학자인 金鉉이 按使였던 金繼輝에게 청하여 사당이 건립되었다.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