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음1(題音1)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제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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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題音1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경주부윤 |
수취(한자) | 慶州府尹 |
발급(한글) | 미상 |
발급(한자) | 未詳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미상 |
발급목적 | 李梡 등의 李全仁 포증 요청에 대한 경주부윤의 의견서 |
간행년(서기력) | 미상 미상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40x31.5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경상북도 |
소장처2 | 경주시 |
소장처3 | 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
MF |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김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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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7-10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題音1
김채식
【정의】
경주부윤의 보고서 말미의 글로, 효성과 학문이 훌륭한 潛溪 李全仁을 표창하고, 그 가문을 旌閭해 달라는 내용과 그 판결문.
【내용】
[주제]
이 문서는 경주 부윤이 올리는 보고서에 붙은 말미의 글과 그에 대한 관부의 판결문이다. 그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주부윤이 서울에 있을 때, 이미 잠계 이전인의 學行과 誠孝의 대략을 들었고, 부임한 후 文獻과 여론에서 참작하여 잘 알았다. 잠계의 효성과 학문은 李梡 등이 올린 상소의 내용과 같았다. 잠계는 회재 선생의 아들로 가르침을 받아 그 효성이 유배지에서 부친의 관을 지고 돌아오고, 임금 앞에 상소를 올리는 데에서 드러났다. 그의 훌륭한 행실에 힘입어 회재의 成德大業이 당세에 없어지지 않고 백세 후에까지 전해지니 자식답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효성만이 아니라 그의 독실한 학문은 「關西問答」과 「誓天箴」에서 드러났다. 이러하다면 표창을 받아야 마땅한데 유독 포상의 은전이 내리지 않았으니, 태평성대의 한 가지 흠이 된다고 하겠다. 더구나 獨樂堂과 養眞菴은 회재가 가르치던 곳으로 잠계도 이곳에서 배워 부친의 학문을 이었다. 또 회재의 글씨와 인조가 내리신 글씨도 보존되어 있으니, 지금 그 건물에 旌閭한다면 집안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큰 영광이 될 것이다.
후반부에는 題辭(판결문)가 붙어 있는데, ‘지금 보고한 내용을 보건대 감탄을 이기지 못하겠다. 다만 학문의 연원은 한두 개의 행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신중히 살펴야 하는 도리에 비추어 보면 장계만을 따르기 어려우니, 조정에 稟達한 후 처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용어]
題辭: 제출된 訴狀 등에 대해 官府에서 내리는 판결이나 지령을 가리킴.
[인물]
李梡(1604~1649): 자는 子完, 본관은 延安. 백성을 안정시키고 진휼하는데 탁월하였고, 성품이 강직하여 김자점․이이첨 등의 죄상을 극언하였다.
[지명]
【특징】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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