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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2(詩文類2)

자료명 시문류2(詩文類2) 저자 미상(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 서지정보 서지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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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서명시문류2
한자문서명詩文類2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미상
수취(한자)미상
발급(한글)미상
발급(한자)미상
찬자(한글)이제신
찬자(한자)李濟臣
발급목적江界 소재 李彦迪 祠堂의 기문
간행년(서기력)宣祖14   1581 -
유형고문서
크기65x475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경상북도
소장처2경주시
소장처3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MF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김채식
해제작성일2002-07-10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詩文類2
김채식
【정의】
江界李文元公廟記. 평안도 江界에 있는 文元公 李彦迪을 모신 사당에 대해 적은 李濟臣의 記.
【내용】
[주제]
기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江界의 사당은 文元公 李彦迪(1491~1553)을 모신 사당이다. 선생이 明宗 때 權奸들의 모함에 빠져 4천여 리나 떨어진 이곳으로 귀양을 와서 모친을 끝까지 모시지 못하는 심정에 문을 닫아걸고 8년 간 해를 보지 않았다. 끝내 이곳에서 돌아가시니 그 학문의 조예는 퇴계 같은 분의 글에서 알 수 있다. 선생의 충성은 임금에 올린 「一綱十目疏」에 드러나고, 효성은 「奉先雜儀」에 갖추어 졌으며, 「求仁錄」의 立言과 「元朝五箴」 등의 自警을 보면 평소의 말씀과 실천이 절박한 처지에서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곤액을 당한 것을 子貢과 顔回는 스승의 도가 너무나 커서 용납되지 못한 것이라고 탄식하였는데, 회재 선생 또한 1530년과 1546년에 곤액을 겪었다. 지금은 하늘의 바람이 깨끗이 씻고 밝은 해가 높이 솟아 흉악한 귀신은 처단되고 억울한 혼령은 신원되는 때라 선생도 이에 표창되고 시호가 내려 넓은 사당에서 흠향하시게 되었다. 선생이 당시 권간들에 핍박당하였다가 이제 높고 영화롭게 되었으니, 선생이 도리어 권간들의 은혜를 입은 격인데 이는 福善禍淫의 도리요 天理라 아니할 수 없다. 병자년(1576) 參判 金繼輝(1526~1582)가 평안도 관찰사로 와서 유학의 부흥을 임무로 떠맡아 熙川에는 兩賢祠를 세우고 강계에는 文廟 우측에 회재 선생을 위하여 사당을 마련하였다. 나에게 기문을 청해오기에 널리 다른 문인들을 물색하다가 어쩔 수 없이 떠맡아 기문을 적고, 사당의 벽에 선생의 여섯 편의 箴을 써 걸어 배우는 사람들이 선생께서 공부하신 과정을 알게 하고자 한다.
[용어]
「一綱十目疏」․「奉先雜儀」․「求仁錄」․「元朝五箴」 : 회재 문집 중의 편명.
[인물]
李濟臣(1536~1584)의 자는 夢應, 호는 淸江, 본관은 全義이다. ꡔ명종실록ꡕ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81년에는 강계부사를 지냈고,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는 등 강계 지방과 인연이 깊은 문신이다.
金繼輝(1526~1582)의 자는 重晦, 호는 黃岡, 본관은 光山이다. 1575년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였고, 1581년에는 宗系辨誣를 위해 奏請使로 중국을 다녀왔다.
[지명]
江界는 평안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회재 이언적이 1547년에 유배를 와서 머물다 1553년 그곳에서 졸하였다.
【특징】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