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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1(詩文類1)

자료명 시문류1(詩文類1) 저자 미상(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M35-10461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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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서명시문류1
한자문서명詩文類1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미상
수취(한자)미상
발급(한글)미상
발급(한자)미상
찬자(한글)이덕형 등
찬자(한자)李德馨 等
발급목적李德馨, 李恒福, 吳億齡이 찬한 李彦迪의 太極書跋文
간행년(서기력)光海君1   1609 -
유형고문서
크기156x27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경상북도
소장처2경주시
소장처3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MFM35-10461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김채식
해제작성일2002-07-10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詩文類1
김채식
【정의】
太極書跋文. 晦齋 李彦迪이 지은 太極書 4편과 元朝五箴을 손자인 李浚이 병풍을 만들어 李德馨․李恒福․吳億齡에게 받은 발문 3편.
【내용】
[주제]
이덕형(1561~1613)이 지은 발문에, 회재의 태극서 4편은 주자(주돈이)와 정자(정이)의 은미한 뜻을 잘 파악하였다고 하였다. 본래 주돈이가 정자와 그 문하에 「西銘」을 전수하고 태극도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배우는 사람이 고원한데로 치달릴까 염려한 까닭이다. 이에 주자가 나와 그를 이어 변론을 남김 없이 하여 미혹됨이 없게 되었으니, 세상에 忘機堂 曺漢輔와 같은 사람의 학설이 끊임없이 나온들 어쩌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은 퇴계 이황 또한 회재의 정밀한 조예와 홀로 터득한 妙理가 이 글에 가장 많이 나타나 있다고 칭찬하였던 글이다. 회재의 후손이 李浚이 이 글을 써서 병풍을 만들고 발문을 내게 부탁하기에 말을 아는 사람은 아니나, 다만 朱子․程子의 학문이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라고 異說이 사람을 현혹시킴을 근심하는 취지에서 글을 짓는다고 하였다.
이항복(1556~1618)의 발문에, 회재 선생의 원조오잠과 태극서 5편은 南窓. 金玄成(1542~1621)의 글씨로, 선생의 후손 李浚이 발문을 부탁하기에 쓴다고 하였다. 오잠론은 선생이 27세에 쓴 글로 학문과 덕행이 일찍 성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장도 일찍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퇴계가 정밀한 견해와 홀로 터득한 妙理가 精微함을 다하고 上下에 관통하였다고 평하였는데 타당한 말이다. 중국에 있어서 孟子와 朱子가 유가의 도를 밝히어 그 공이 높은데, 우리나라에서는 圃隱 鄭夢周 이래로 여러 현인들이 유가의 도를 이어 왔으나, 여러 설이 난무하여 계통이 없다가 퇴계에 이르러 크게 정리되었다. 세상에서 퇴계의 공이 주자보다 못하지 않다고 하는데, 퇴계는 회재의 학문이 이치가 명백하고 의리가 정밀하여 혼연히 저절로 이루어져 우리나라에서 그 짝이 드물다고 평가하니 나도 퇴계의 말을 따르겠다는 말로 마감하였다.
오억령(1552~1618)의 발문에, 우리나라에서 立言하여 후세에 가르침을 내린 이로는 회재선생에서 비로소 성대해졌고, 선생의 저서 중 정밀하고 독특하여 유학에 큰 공이 있는 것은 이 다섯 편의 글이 가장 뛰어나다. 중국 유학의 도는 복희씨→공자→주돈이→주자로 이어져, 주자가 天人合一, 動靜交養, 下學上達 등의 원리를 밝혀 처음과 끝, 크고 작은 것이 남김없이 갖추어졌다. 회재 선생의 이 글은 주자의 본뜻을 미루어 더욱 상세히 밝힌 것으로 그 학문이 옛 성현들이 전해 준 心法과 잘 부합하니 忘機堂 曺漢輔 같은 사람의 설이 유행하지 못할 것이다. 퇴계가 말한 ‘유가의 도의 근본을 열고 이단을 막아 순수하게 바른 데서 나왔다’는 말은 이 글의 實錄이라 할 만하다. 선생은 어려운 때를 만나 마침내 흉악한 사람들에게 곤궁을 겪고 가진 바를 펴지 못하고 말았으니, 하늘이 인재를 낸 뜻을 알지 못하겠으나, 이 글이 남은 것은 하늘이 후세의 유학을 위하여 안배한 것이 아니겠는가? 손자 李浚이 이 글을 써서 玉山書院에 보관하여 후학들의 모범으로 삼으려 하니 그 뜻이 부지런하다. 배우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유가의 법과 이단이 다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니, 선생의 진정한 마음을 터득한다면 유학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발문을 지었다.
[용어]
元朝五箴은 정초에 지은 다섯 편의 경계하는 말로 ‘畏天箴’․‘養心箴’․‘敬身箴’․‘改過箴’․‘篤志箴’이 그것이다. 太極書는 忘機堂 曺漢輔의 無極太極說을 논한 1편의 편지와 조한보에게 준 4편의 답장을 가리킨다.
[인물]
曺漢輔(?~?)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로, 호는 忘機堂, 본관은 慶州이다. 독서를 널리하여 外叔 孫叔暾과 無極太極에 관해 논변하였고, 나중에는 李彦迪과 네 차례에 걸쳐 논쟁을 벌였다. 이언적과의 논변은 한국 유학사의 큰 논변의 하나로서 성리학 체계 확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명]
【특징】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