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찰144(簡札144)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간찰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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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簡札144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서간사 |
수취(한자) | 西磵祠 |
발급(한글) | 장산서원 |
발급(한자) | 章山書院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미상 |
발급목적 | 廟宇改築에 필요한 경비 협조 요청 |
간행년(서기력) | 哲宗3 1862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46.3x31.5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경상북도 |
소장처2 | 경주시 |
소장처3 | 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
MF |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이성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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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7-10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簡札144
이성주
【정의】
임술년 2월 6일에 안동(安東) 서간사(西磵祠)에서 묘우개축(廟宇改築)에 필요한 경비를 협조해 줄 것을 부탁하는 뜻으로 경주(慶州) 장산서원(章山書院)에 보낸 통문(通文).
【내용】
[주제]
묘우(廟宇)가 오래되고 헐어서 새로 짓는데 재력(財力)이 달려 언제 준공될지 모르겠으니 선현(先賢)을 존모(尊慕)하는 마음은 멀고 가까운 차이가 없으니 부디 협조하여 큰일을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하는 사연이다.
[용어]
장산서원(章山書院)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아들 이전인(李全仁:1516~1568)을 봉향한 서원인데 사림(士林)의 공의(公議)로 세웠다는 언급이 송래희(宋來熙)가 지은 「잠계행장(潛溪行狀)」에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 실린 간찰, 즉 정사년에 장동표(張東杓)가 사당(祠堂)을 건립하고 편액(扁額)을 하사받아 제향(祭享)하는 것은 휼륭한 일이라 추중하는 뜻으로 계정(溪亭)에 회답한 위의 간찰 27(B2000735)과 아래 간찰 171(B20000876E), 그리고 ꡔ잠계유고(潛溪遺稿)ꡕ 부록의 「장산서원 봉안문(章山書院奉安文)」을 참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1868년 고종 금령(禁令)에 헐리고, 1984년에 독락당 앞에 이 「잠계공기적비」를 세웠는데, 비문은 성균관장을 지낸 박성수(朴性洙)가 지었다. 피봉의 안동(安東) 서간사(西磵祠)는 조선 인조․효종 때의 상신(相臣)인 김상헌(金尙憲:1570, 선조 3~1652, 효종 3)을 봉안한 사우이다. 그의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중년 이후 楊州 石室에 退歸해 있으면서 사용)․서간노인(西磵老人:만년에 安東에 은거하면서 사용)이라 하였는데, 그는 후에 이 사당에 제향(祭享)되었다. 서울출생으로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우의정 상용(尙容)의 동생으로 3세 때 큰아버지인 현감 대효(大孝)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인물]
[지명]
【특징】
조선시대 서원(書院)이나 사우(祠宇)를 신축하거나 이건(移建)할 때, 주변의 유림(儒林)에게 지원을 요청한 사례를 볼 수 있는 통문(通文)이라 하겠다.
【비고】
피봉에는 [西澗書院]이라는 네모난 인장(印章)이 찍혀있고, 두 줄로 慶州 安東西磵祠 簡通과 章山書院 僉案 入納이라 적혀 있다. 그런데 이를 세로로 읽으면 경주 안동 서간사 이지만 수신자가 장산서원 첨안이므로 정의에서 설명한 것처럼 안동 서간사에서 경주 장산서원으로 보낸 간찰로 보아야 한다.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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