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찰94(簡札94)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간찰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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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簡札94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대용 |
수취(한자) | 大容 |
발급(한글) | 미상 |
발급(한자) | 未詳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미상 |
발급목적 | 안부를 전하고 건어(乾魚)를 보내준 것에 사례함 |
간행년(서기력) | 庚申 미상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41.5x32.5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경상북도 |
소장처2 | 경주시 |
소장처3 | 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
MF |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김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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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7-10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簡札94
김상환
【정의】
경신년 3월 16일에 대용(大容)이 옥산(玉山)에 보낸 편지이다.
【내용】
[주제]
봄 추위에 여러 형제분의 안부를 묻고 경과(慶科)에 용감하게 달려 가려고 했는데, 정지되었다는 말에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지난 가을에 보낸 편지를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하니 중간에 어디서 유실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뜻을 표하고, 자신은 병이 날로 깊어간다는 근황을 전하는 사연이다. 또한 편지와 함께 보내준 건어(乾魚)도 잘 받았다는 인사를 하였다.
[용어]
경과(慶科)는 조선시대에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이던 과거를 말한다. 조선 전기에는 즉위경(卽位慶)․30년등극경(登極慶)과 같은 큰 경사가 있거나 작은 경사가 여럿 겹쳤을 때 시행한 증광시(增廣試), 작은 경사가 있을 때 시행한 별시(別試), 임금이 문묘(文廟)에 참배한 뒤 명륜당(明倫堂)에서 유생들을 시험한 알성시(謁聖試)뿐이었으나, 후기에는 정시(庭試)․춘당대시(春塘臺試)․외방별시(外方別試)․절일제(節日製)․황감제(黃柑製) 등 많은 과시(科試)가 새로 생겨 그 종류가 10여 개나 되었다. 이는 인재등용이라는 과거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유생들에게 국경(國慶)의 기쁨을 나누어주고, 변방에 있는 유생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시행된 것이라 하겠다. 좌정(坐停)은 일시적으로 정지됨, 체리(棣履)는 형제간의 안부, 부침(浮沈)은 편지가 중간에 사라짐, 반간(伴簡)은 편지와 짝하여 같이 보낸다는 뜻이다.
[인물]
대용(大容)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과학사상가인 홍대용(洪大容:1731, 영조 7~1783, 정조 7)으로 보인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홍지(弘之). 담헌(湛軒)이라는 당호(堂號)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사간 용조(龍祚)의 손자로, 역의 아들이다. 특히, 지전설(地轉說)과 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을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자연관을 근거로 화이(華夷)의 구분을 부정하여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로서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당대의 유학자 김원행(金元行)으로부터 배웠고, 북학파의 실학자로 유명한 박지원(朴趾源)과는 깊은 친분이 있었다. 여러 번 과거에 실패한 뒤 1774년(영조 50)에 음보(蔭補)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 및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이 되었고, 이어 1777년(정조 1) 사헌부감찰, 그 뒤 태인현감․영천군수를 지냈다.
[지명]
【특징】
경과(慶科)를 준비하던 사람이 정지되자 실망하는 사연을 적은 간찰이다.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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