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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91(簡札91)

자료명 간찰91(簡札91) 저자 이석사(李碩士)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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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서명간찰91
한자문서명簡札91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남공철
수취(한자)南公轍
발급(한글)이석사
발급(한자)李碩士
찬자(한글)미상
찬자(한자)미상
발급목적옥산정사를 배알한 감회를 전달하고 옥산정사기를 지어 올림
간행년(서기력)純祖2   1802 -
유형고문서
크기41x33.5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경상북도
소장처2경주시
소장처3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MF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김상환
해제작성일2002-07-10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簡札91
김상환
【정의】
임술년(1802, 순조 2) 9월 8일에 공철(公轍)이 보낸 편지이다.
【내용】
[주제]
전에 만난 것에 사례하고 맑은 가을에 안부를 물은 다음 자신은 잘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어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문원공(文元公:李彦迪)을 배알하니 선생의 도학유풍(道學遺風)에 후생(後生)으로 모앙(慕仰)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고, 게다가 수석(水石)이 맑고 빼어나 더욱 잊을 수 없다 하였다. 또 정사기(精舍記)를 지어 인본(印本)과 함께 올린다는 사연이다.
[용어]
경봉(頃奉)은 전에 만났던 것을 말하고, 첨리(僉履)는 여러 분의 안부를 뜻한다.
[인물]
공철(公轍)은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정치가인 남공철(南公轍:1760, 영조 36~1840, 헌종 6)로 보인다. 그의 본관은 의령. 자는 원평(元平), 호는 사영(思穎)․금릉(金陵)이니, 서울출신이다. 아버지는 대제학 유용(有容)이다. 1780년(정조 4) 초시에 합격하고, 1784년에 아버지가 정조의 사부였던 관계로 음보로 세마(洗馬)를 제수(除授)받았고, 이어 산청(山淸)과 임실(任實)의 현감을 지냈다.
[지명]
【특징】
남공철이 옥산서원을 방문했을 때, 후손이 정사기(精舍記)를 지어 달라고 청하자, 이에 기문(記文)과 함께 보낸 편지로 추정된다.
【비고】
이 편지는 남공철이 1792년에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홍문관부교리․규장각직각에 임명되어 ꡔ규장전운(奎章全韻)ꡕ의 편찬에 참여하면서 정조의 지극한 우대를 받아 초계문신에 선임되어 문단에 주목을 받을 때에 쓴 것이다. 그는 주로 대사성(大司成)으로서 후진교육문제에 전념하였다. 순조 즉위 뒤 ꡔ정종실록ꡕ 편찬에 참가하였으며, 아홉 번씩 이조판서를 제수받고,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정의】
모년 모월 모일에 안사(按使)가 계정(溪亭) 이석사에게 보낸 별지(別紙)이다.
【내용】
[주제]
현판(懸板)을 정사(精舍)의 좋은 곳에 견고하게 걸었는지 묻고, 인본(印本)은 문적소장처(文蹟所藏處)에 보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전하는 사연이다. 끝에 간지(簡紙) 50폭(幅)을 보낸다 하였다.
[용어]
현판(懸板)은 기문(記文)이나 시고(詩稿), 혹은 당호(堂號)를 새겨 걸어두는 판자를 가리킨다. 안사(按使)는 관찰사를 뜻한다.
[인물]
[지명]
【특징】
필체(筆體)와 별도의 서명(署名)이 없는 점으로 보아 앞의 남공철이 보낸 편지에 딸린 별지(別紙)로 추정된다.
【비고】
자신이 지은 글을 좋은 곳에 걸어주고, 또 인본(印本)을 잘 보관해 주기를 바라는 문인(文人)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