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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고사(桂坊故事)

자료명 계방고사(桂坊故事) 저자 세자익위사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서/일기 주제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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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일기
·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 작성지역 한성 (현재주소: 서울)
· 작성시기 1875 (을해 정월 초 1일)
· 비고 청구기호: K2-2020, 마이크로 필름 번호: MF35-815~819 , 기록시기: 1875.01.01.~1906.12.30.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편찬 世子翊衛司 세자익위사

형태사항

· 크기(cm) 27cm X 19.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不分卷 32冊
· 판식 四周雙邊, 有界, 半葉 10行20字, 上下向黑魚尾.
· 재질 종이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32 (적색, 정방형, 4.4x4.4, 李王家圖書之章)

· 안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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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계방고사(桂坊故事)
이 일기는 순종(純宗, 1874~1926)의 동궁(東宮)시절 배위(陪衛)를 담당했던 계방(桂坊)의 동정을 엿볼 수 있는 관청일기(官廳日記)로, 1875년(고종 12) 1월 1일부터 1906년(광무 10) 12월 30일까지 31년간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제1책에서 순종의 왕세자 책봉에 관한 고종의 전교(傳敎)를 시작으로, 2월 왕세자 책봉에 관련한 교명문(敎命文), 죽책문(竹冊文), 반교문(頒敎文) 등의 전문(全文)이 실려 있다. 전반적으로 진하(陳賀)와 전배(展拜), 각 국(國)의 공사(公使) 접견(接見) 등 왕세자의 각종 의식과 일상거동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자료는 순종이 출생해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 30여년동안 군주로서의 자질을 육성하고 의례와 절차를 몸으로 익히며, 조신(朝臣)을 접견하여 정치에 대한 보고를 듣는 등 정치 역량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당시 일제(日帝)의 침략으로 의례적인 행사만을 하며 피동적인 생활을 한 힘없는 군주로서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桂坊故事』(奎12852)

집필자

1차 집필자 : 육수화, 2차 집필자 : 권석창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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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순종(純宗, 1874~1926)의 동궁(東宮)시절 배위(陪衛)를 담당했던 계방(桂坊)의 동정을 엿볼 수 있는 관청일기(官廳日記)로, 1875년(고종 12) 1월 1일부터 1906년(광무 10) 12월 30일까지 31년간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원자료제목
· 표제桂坊日記
· 내제桂坊故事
[내용 및 특징]
이 일기는 순종(純宗, 1874~1926)의 동궁(東宮)시절 배위(陪衛)를 담당했던 계방(桂坊)의 동정을 엿볼 수 있는 관청일기(官廳日記)로, 1875년(고종 12) 1월 1일부터 1906년(광무 10) 12월 30일까지 31년간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일기의 편찬 주체인 계방은 조선시대 왕세자(王世子)의 배위기관이었던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별칭이다. 세자익위사는 1418년(태종 18)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조선(朝鮮)을 건국한 직후 태조(太祖)는 1392년(태조 원년) 7월에 즉위교서를 발표하고, 관제를 정비하면서 세자관속(世子官屬)을 두었는데, 당시 세자관속은 시강(侍講)과 배위가 일원화되어 있었다. 태종(太宗)세자익위사를 별도로 설치함에 따라 시강과 배위가 이원화되어 시강은 세자관속이 전담하고, 배위는 세자익위사가 담당하였다. 당시 세자익위사의 자격은 갑사(甲士) 중에서 마땅한 사람을 택하여 차하(差下)하고, 또 공신의 자제를 선발하되 비록 공신이 아니더라도 재상의 자제로서 위사(衛士)에 마땅한 자도 아울러 서용하였다. 세자익위사 소속 관원들을 살펴보면, 좌·우익위(左·右翊衛), 좌·우사어(左·右司禦), 좌·우익찬(左·右翊贊), 좌·우위솔(左·右衛率), 좌·우부솔(左·右副率), 좌·우시직(左·右侍直), 좌·우세마(左·右洗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익위(翊衛), 사어익찬(司禦翊贊)·위솔(衛率)·부솔(副率)·세마(洗馬) 각 1원으로 축소 개편되었다. 이는 왕권이 약화되고, 왕실의 위상이 격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일기의 중심인물인 순종의 이름은 척(坧)이고, 자(字)는 군방(君邦)이며, 호(號)는 정헌(正軒)이다. 1874년(고종 11) 2월 8일 창덕궁(昌德宮)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高宗, 1852~1919)과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종명성황후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들은 1871년(고종 8) 11월에 태어났으나, 나흘 만에 죽었다. 순종은 태어난 이듬해인 1875년(고종 12) 2월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897년(광무 원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수립에 따라 10월 황태자(皇太子)로 책봉(冊封)되었다. 1882년(고종 19) 입학례(入學禮)와 관례(冠禮)를 거행하고, 첫 번째 세자빈(世子嬪)인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민태호(閔台鎬)의 딸과 가례(嘉禮)를 올렸다. 1904년(광무 8) 11월에 세자빈이 33세의 나이로 훙서(薨逝)함에 따라 1907년(광무 11) 1월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 윤택영(尹澤榮)의 딸을 황태자비로 맞아들였다. 1907년 7월 고종의 지시를 받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다가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같은 달 22일에 황제로 높여 불렀으며, 8월 2일에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고, 8워 27일 경운궁(慶運宮) 돈덕전(惇德殿)에서 즉위했다. 재위 4년만인 1910년(융희 4) 8월 29일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26년 4월 25일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향년 53세로 승하(昇遐)했다.
이 일기는 32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표지의 왼쪽상단에는 ‘桂坊日記’라는 표제가 기재되어 있고, 오른쪽 상단에는 일기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기간이 기재되어 있다. 표지는 청색(靑色)으로 되어 있다. 각 책의 표지 배면(背面)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1과(果)씩 찍혀있다. 각 책의 말미에는 필사한 시기와 필사자(筆寫者)와 검열한 시기와 검사자(檢査者)나 검열자(檢閱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1책의 필사자는 정기민(鄭琦民)이고, 검열자는 김석빈(金碩彬)이다. 각 책의 필사시기를 살펴봤을 때, 필사 시기는 1930년 3월부터 4월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검사 및 검열은 그해 4월부터 5월 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왕직(李王職)에서 『춘방일기(春坊日記)』를 필사한 시기와도 비슷하다. 필사에는 10행 20자의 이왕직원고지(李王職原稿紙)가 사용되었다.
일기의 기재방식은 먼저 해당 년의 간지와 음력 날짜, 날씨를 기재하고, 개행(改行)하여 본문을 기재하는 방식이다. 1894년 8월 2일부터 간지의 앞에 개국 ○○○년이나, 건양(建陽) ○○년, 광무(光武) ○○년을 기재하였다. 1896년(건양 1)부터는 양력 날짜를 중심으로 작성하고, 대신 날씨 아래에 음력 날짜를 부기(附記)하였다.
그러나 27책에서 광무 5년 정월 1일로 시작하며 다시 음력 날짜를 중심으로 작성하고, 양력 날짜는 부기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기재했다. 이 때문에 제 27책의 첫 기사 날짜는 광무 5년 정월 1일이나, 제 26책의 마지막 기사 날짜는 광무 5년 2월 18일로 끝난다.
이 일기는 1875년부터 1906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데, 각 책별로 수록된 연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 1책: 1875년 1월~12월, 제2책:1876년 1월~12월, 제3책:1877년 1월~12월, 제4책:1878년 1월~12월, 제5책:1879년 1월~12월, 제6책:1880년 1월~12월, 제7책:1881년 1월~12월, 제8책:1882년 1월~12월, 제9책:1883년 1월~12월, 제10책:1884년 1월~12월, 제11책:1885년 1월~12월, 제12책:1886년 1월~12월, 제13책:1887년 1월~12월, 제14책:1888년 1월~12월, 제15책:1889년 1월~12월, 제16책: 1890년 1월~12월, 제17책: 1891년 1월~12월, 제18책: 1892년 1월~12월, 제19책: 1893년 1월~12월, 제20책: 1894년 1월~12월, 제21책: 1895년 1월~11월, 제22책: 1896년 1월~12월, 제23책: 1897년 1월~12월, 제24책: 1898년 1월~12월, 제25책: 1899년 1월~12월, 제26책: 1900년 1월~1901년 2월, 제27책: 1901년 1월~12월, 제28책: 1902년 1월~12월, 제29책: 1903년 1월~12월, 제30책: 1904년 1월~12월, 제31책: 1905년 1월~12월, 제32책: 1906년 1월~12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각기 표지에 기재된 날짜를 중심으로 기재한 것인데, 1~21책까지는 음력 날짜를 기준으로, 22~26책은 양력 날짜를 기준으로, 27~32책은 음력 날짜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음력과 양력 날짜의 기준을 바꿔가며 썼기 때문에 기간이 겹치는 부분과 비는 부분도 조재하지만, 사실상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28책부터 음력을 기준으로 일기의 날짜를 기재하며, 양력을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하여 28책은 1902년(광무 6)의 기록인데, 12월 2일부터 광무 7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우가 29~32책에도 나타나는데, 29책은 1903년(광무 7)의 기록인데, 11월 15일부터 광무 8년으로, 30책은 1904년(광무 8)의 기록인데, 11월 26일부터 광무 9년으로, 31책은 1905년(광무 9)의 기록인데, 12월 7일부터 광무 10년으로, 32책은 1906년이 기록인데, 11월 17일부터 광무 11년으로 기재하였다.
이 일기는 제1책에서 순종의 왕세자 책봉에 관한 고종의 전교(傳敎)를 시작으로, 2월 왕세자 책봉에 관련한 교명문(敎命文), 죽책문(竹冊文), 반교문(頒敎文) 등의 전문(全文)이 실려 있다. 전반적으로 진하(陳賀)와 전배(展拜), 각 국(國)의 공사(公使) 접견(接見) 등 왕세자의 각종 의식과 일상거동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태조탄신팔회갑연의식(太祖誕辰八回甲年儀式), 왕세자의 거동에 따른 수행과정(隨行過程), 생일을 축하하여 성균관(成均館)에서 과거(科擧)를 보인 일, 세자빈 간택절차(揀擇節次), 세자빈의 책봉, 납채(納采)와 초례(醮禮)의 절차, 가례의 시행, 효휘전삭제(孝徽殿朔祭), 삼우제(三虞祭), 왕대비전중궁례(王大妃殿中宮禮), 대보단제(大報壇祭), 증작(曾酌), 상견계(相見禮), 을미년(乙未年) 민비시해(閔妃弑害)에 따른 동궁의 장례의식(葬禮儀式) 등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관련문헌으로는 동일한 서명으로 규장각 소장본 『계방고사』(奎12852)를 들 수 있다. 이는 모두 31책으로 구성되어 있어 장서각 소장본보다 1책이 적은데, 1885년(고종 22)의 기록이 누락되어 있다. 하지만 장서각 소장본은 1930년에 필사된 것인데 비해, 규장각 소장본은 세자익위사에서 편찬한 것으로 보아 필사 시기는 장서각 소장본보다 앞선 것으로 보인다.
[자료적 가치]
이 자료는 순종이 출생해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 30여년동안 군주로서의 자질을 육성하고 의례와 절차를 몸으로 익히며, 조신(朝臣)을 접견하여 정치에 대한 보고를 듣는 등 정치 역량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당시 일제(日帝)의 침략으로 의례적인 행사만을 하며 피동적인 생활을 한 힘없는 군주로서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承政院日記』
서울大學校圖書館 編 『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 : 史部』 서울대학교 도서관, 1978
千惠鳳․尹炳泰 共著 『藏書閣의 歷史와 資料的 特性』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6
韓國學中央硏究院 國學振興硏究事業推進委員會 編 『藏書閣圖書韓國本解題1 : 日帝時代』 韓國學中央硏究院, 2006
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 『藏書閣圖書韓國本解題 : 詔令奏議類·職官類』 韓國學中央硏究院, 2007
陸受禾 「朝鮮時代 世子侍講院의 敎育課程」 『藏書閣』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집필자

1차 집필자 : 육수화, 2차 집필자 : 권석창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