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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일록(南征日錄)

자료명 남정일록(南征日錄) 저자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서/일기 주제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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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일기
·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 작성지역 한성 (현재주소: 서울)
· 작성시기 1728 (무신 3월17일)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형태사항

· 크기(cm) 30.8cm X 19㎝
· 판본 방정리자목활자본(倣整理字木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4卷 2冊
· 판식 四周雙邊, 半郭 22.1×14.5cm, 有界,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
· 재질 종이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2 (적색, 정방형, 5.8×5.8cm, 藏書閣圖書印)
· 인장 2 (적색, 정방형, 3×3cm, 潘南)

· 안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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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남정일록(南征日錄)
『남정일록(南征日錄)』은 1728년에 발생한 무신난(戊申亂; 李麟佐亂)의 전개와 이를 진압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으로 영조(英祖)의 명(命)에 의해 편찬된 것이다.
책은 영조가 직접 짓고 쓴 어제어필(御製御筆)과, 범례(凡例), 본문 기사,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3월 17일부터 시작하여 동년 7월 20일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중간에 없는 날짜가 많아 실제 기록일은 41일에 불과하다. 『남정일록』에서 실제 평정기록은 3월 17일부터 4월 19일에 끝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그 후의 8일간의 기록은 본사건(本事件)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정일록(南征日錄)』은 중앙의 수부(帥府)에서 당시 난의 진압과정을 일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난의 평정 사실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난후(亂後)에 관계기사를 여러 기록에서 초출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러나 어명(御命)에 따라 지어진 만큼 당시 난과 관련한 구체적 문건들을 모두 수합하여 그 배경과 전개양상, 군대의 운영, 난후의 상황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어 이인좌의 난 연구에 대표적인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집필자

박진성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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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28년에 발생한 무신난(戊申亂)의 전개와 이를 진압하는 모든 과정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기록된 일기이다.
원자료제목
· 표제 南征錄
· 내제南征日錄
· 판심제南征日錄
[내용 및 특징]
『남정일록(南征日錄)』은 1728년에 발생한 무신난(戊申亂; 李麟佐亂)의 전개와 이를 진압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으로 영조(英祖)의 명(命)에 의해 편찬된 것이다.
영조(英祖) 4년인 1728년에 발생한 무신난(戊申亂)은 주도자인 이인좌(李麟佐)의 이름에 따라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이인좌 등이 영조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 1698~1729)을 추대하고 일으킨 반란을 말한다. 1721년 신임사화(辛壬士禍) 이후 실각 당하였던 노론(老論)이 영조의 즉위와 동시에 다시 집권하고, 앞서 노론 4대신을 무고한 바 있었던 소론파(少論派)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이 죽음을 당하자, 그 당의 나머지는 불만을 품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 1727년 7월 1일 노론의 일부가 실각함을 보고, 이듬해 3월에 이인좌가 주동이 되어 밀풍군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소론의 원로였던 최규서(崔奎瑞)가 이를 알고 조정에 고변(告變)하여 반군의 계획은 무너지고, 새로 도순무사(都巡撫使)에 임명된 병조판서(兵曹判書)오명항(吳命恒, 1673∼1728)의 관군에 의하여 반란은 진압되었다.
이인좌를 비롯한 반란의 주모자들은 서울로 압송(押送)되어 처형되었고, 밀풍군도 사사(賜死)되었다. 이 난에 가담한 인물들이 대부분도 소론의 급진 세력 이였기에 이 난으로 소론의 세력은 크게 타격을 받았으며, 이후 정권은 대개 노론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장서각에는 『남정일록(南征日錄)』 K2-184본과 K2-185본 두 본이 소장되어 있다. 각각 4권 4책과 4권 2책으로 되었으나 전자는 2권을 1책으로 하였고 후자는 1권을 1책으로 정하였을 뿐 내용상의 차이는 없는 동일한 판본이다. 두 본 모두 언제 편간(編刊)하였다는 기록이 없어 명확한 간행연도(刊年)는 알 수 없으며, 표제는 ‘南征錄’, 내제와 권수제(卷首題)는 ‘南征日錄’으로 되어 있다. 이 일기는 첫장에 박제문(朴齊聞, 1787~1838)의 본관[潘南]과 성명, 자[敬韶]를 새긴 3개의 인장이 찍혀 있어 순조(純祖)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했던 박제문의 소장본임을 알 수 있다.
『남정일록(南征日錄)』은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편저자 확인이 쉽지 않다. 다만 범례에 따르면 이 책의 편집을 주도한 인물이 ‘원수(元帥)’이기에, 글의 내용에 ‘공(公)’ 혹은 ‘순무(巡撫)’로 기록한다고 하였는데, 이로써 본다면, 당시의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정일록』 권수(卷首)에 실린 ‘志確功高’ 4자는 영조(英祖)가 오명항에게 하사한 어필로 『영조실록(英祖實錄)』 4년 3월 26일자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어 오명항이 편찬자일 가능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책은 어제어필(御製御筆)과, 범례(凡例), 본문 기사,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어제어필(御製御筆)인 「諭四路都巡撫使手書」와 ‘志確功高’ 4자가 수록되었다. 이는 영조가 1728년 3월 28일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에게 공적을 치사하고 백성들을 안심시키는데 진력하라고 내린 격려의 글과 하사한 글씨이다.
이어 범례에는 책의 편집에 이용된 자료와 편집을 주도한 인물, 편집방침을 밝혔으며 부록으로 난의 진압에 공을 세운 인물들에 대한 책훈문자(策勳文字)를 기록한다고 명시하였다.
범례에 따르면 반란이 발생한 초기에 원수부(元帥府)가 설치되지 않아 주로 『정원일기(政院日記)』『감란록(勘亂錄)』『조풍원일록(趙豊原日錄)』군관(軍官)신진숙(申震潚)권희학(權喜學)의 기록 등을 참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남정 이전 일이나 조정의 조치는 간단히 기록하고 남정 이후의 사정을 자세히 다루었으며, 남정과 관련한 전후 주문(奏文), 장계(狀啓), 첩(牒) 등은 번다하더라도 모두 실었다고 하였다.
본문 기사 권1에는 3월 17일 병조판서(兵曹判書) 오명항(吳命恒)을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에 제수한다는 것을 시작으로, 3월 22일까지의 과정을 수록하였다. 내용을 보면 반란군의 활동상황을 개괄하면서 최규서(崔奎瑞)가 보고하는 상황을 기록하였다. 이어 오명항이 정부군을 이끌고 동작진(銅雀津)을 건너 적진으로 진격하는 과정과 조현명(趙顯命)종사관(從事官)에 임명한 사실, 오명항이 병력 증원을 요청하는 내용과 이에 대해 추가 병력을 투입하는 과정 등이 수록되었다.
권2는 3월 23일 오명항을 중심으로 한 정부 진압군이 청룡산(靑龍山)에서 이인좌(李麟佐)의 반란군을 대파하고, 반란군의 장수급인 박종원(朴宗元)을 참수한 내용을 시작으로, 3월 29일까지의 전황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권3은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이 이끄는 정부 진압군이 영남의 반란 무리들을 진압하면서 낮에는 청주(淸州)에, 저녁에는 문의현(文義縣)에 주둔한 내용과 4월 9일 임실(任實)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수록하였다. 진압군의 동향을 살펴보면, 4월 1일에는 회덕(懷德)을 지나 옥천군(沃川郡)에 이르렀으며, 2일에는 영동현(永同縣)으로, 3일에는 추풍역(秋風驛)으로 진군하였다. 4일에는 금산군(金山郡)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부터 영남의 반군을 토벌했다는 첩을 받았다.
권4는 4월 10일 정부 진압군이 남원(南原)을 거쳐 임실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시작으로 11일에 전주(全州), 12일에 여산(礪山), 13일에 공주[公山], 14일에 천안(天安), 16일에 용인(龍仁), 17일에 서빙고(西氷庫), 18일에 동작진(銅雀津)을 건너 19일에 숭례문(崇禮門)으로 들어옴으로써 남정의 임무가 끝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그 후 20일에 오명항은 원훈(元勳)에 녹훈되고, 22일에 난을 평정했음을 태묘(太廟)에 고했으며, 24일∙26일에 녹훈할 일을 의논하게 하고, 7월 18일에는 공신들과 회명연(會盟宴)을 지냈으며, 19일에 공신축(功臣軸)을 만들고 20일에 공신들이 하례의 글을 올린 내용이 수록되었다.
부록에는 노포문(露布文), 병조판서 오명항이 원훈(元勳)을 사양하는 상소문, 종사관(從事官) 박문수(朴文秀)가 녹훈을 사양하는 상소문, 윤혜(尹惠)의 「회맹제천문(會盟祭天文)」, 서명균(徐命均)의 「반축교서(頒軸敎書)」, 「공신등사전문(功臣等謝箋文)」, 「안성평적송공비(安城平賊頌功碑)」 등이 있다.
이상 본문은 3월 17일부터 시작하여 동년 7월 20일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중간에 없는 날짜가 많아 실제 기록일은 41일에 불과하다. 제 1권은 3월 17일~22일, 제 2권은 23일~30일, 제 3권은 4월 1일~9일, 제 4권은 4월 10일에서 7월 20일까지이다.
4월 20일 이후 기록된 날은 22일, 24일, 26일, 29일과 7월 중에 18일, 19일, 20일로 8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실상 『남정일록』에서 실제 평정기록은 3월 17일부터 4월 19일에 끝나는 것이며 그 후 8일간의 기록은 본사건(本事件)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남정일록(南征日錄)』은 범례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의 수부(帥府)에서 당시 난의 진압과정을 일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난의 평정 사실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난후(亂後)에 관계기사를 여러 기록에서 초출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러나 어명(御命)에 따라 지어진 만큼 당시 난과 관련한 구체적 문건들을 모두 수합하여 그 배경과 전개양상, 군대의 운영, 난후의 상황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어 이인좌의 난 연구에 대표적인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주기사항

『英祖實錄』『承政院日記』『1728년 무신사태 고찰』 / 조찬용 / 아이올리브, 2003「1728년 戊申亂과 淸州地域 士族動向」 / 고수연 / 충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영조의 위기극복 리더십 연구: “이인좌의 난” 사례를 중심으로」 / 박현모 / 『한국정치연구』 19호,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2010

집필자

1차 집필자: 안장리 2차 집필자: 박진성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