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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종대왕수릉봉비(翼宗大王綏陵合封碑)

자료명 익종대왕수릉봉비(翼宗大王綏陵合封碑) 저자 이영(李旲), 조씨(趙氏), 이희(李熙), 이희(李熙), 이희(李熙),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308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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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기도 구리 (현재주소: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7-2)
· 작성시기 1890
· 비고 2-5308
1890년(건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이영(李旲)
조씨(趙氏)
이희(李熙)
이희(李熙)
이희(李熙)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묘비문(墓碑文)
· 크기(cm) 223.3 X 112.3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2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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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익종(翼宗)과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수릉(綏陵) 앞에 세운 합봉비(合封碑)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익종대왕수릉봉비(翼宗大王綏陵合封碑)
[내용 및 특징]
익종(翼宗, 1809~1830)의 묘인 수릉(綏陵)에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를 합봉한 후 세운 묘표석을 탁본하여 족자로 장황한 금석문이다. 수릉은 현재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2-1 동구릉(東九陵) 경내에 있다. 비문 끝에 간기가 적혀있어 이 비를 건립한 시기가 1890년(고종 27)임을 알 수 있다. 비가 세워진 곳은 건원릉(健元陵) 왼쪽 언덕으로 쓰여 있다.
탁본면의 가장자리에 비단을 덧대어 족자로 장황하였으며, 풍대(風帶)를 갖추고 있다. 전면은 전서로, 음기는 해서로 쓰여 있다. 모두 고종의 어제어필(御製御筆)이다.
피전자 익종의 이름은 영(旲; 원래의 음은 대이나 영으로 부르도록 정하였음),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이다. 23대 왕인 순조의 세자(世子)이며 어머니는 순원왕후김씨(純元王后金氏)로 조순(祖淳)의 딸이다. 1812년(순조 12)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녕부사 조만영(趙萬永)의 딸인 풍양조씨(豊壤趙氏)를 맞아들여 가례를 올렸다. 1827년 부왕인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어진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는 동시에 백성을 위한 정책의 구현에 노력하였으나 불행히도 대리청정을 수행한 지 4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세자빈인 조씨 일족이 그 뒤 대거 진출하여 안동김씨(安東金氏) 일파와의 정치적 세력투쟁을 시작하면서 정국을 혼란으로 이끌어갔고, 이와 같은 사실은 지배층의 대립을 더욱 격화시켜 조선 후기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민생을 도탄상태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한 뒤 왕으로 추존되어 익종이라 하였다.
피전자 신정왕후의 성은 조(趙), 본관은 풍양(豊壤)으로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의 딸이다. 1819년(순조 19)에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827년(순조 27) 헌종을 낳았다. 1834년 헌종이 왕위에 오르고 죽은 남편이 익종으로 추봉되자 왕대비가 되었고, 1857년(철종 8) 순조비 순원왕후가 죽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1873년(고종 10)까지 효유(孝裕), 헌성(獻誠), 선경(宣敬), 정인(正仁) 의 존호를 받았고, 대왕대비로 추존되었을 때 자혜(慈惠), 홍덕(弘德), 순화(純化), 문광(文光), 원성(元成), 숙렬(肅烈), 명수(明粹), 협천(協天) 등의 존호를 받았다.
1890년(고종 27) 신정왕후가 83세를 일기로 운명하자 익종을 모셔두었던 수릉에 합봉하였는데, 익종과 신정왕후를 합봉한 후 세운 비가 바로 이 비석이다. 비문의 내용은 장서각 소장 《익종대왕수릉비》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전반부에 익종에게 올려진 92자의 추상존호를 열거하고, 고종이 즉위한 해(1864)로부터 이 비를 건립한 시기(1890)까지 익종에게 올려진 추상존호를 연대별로 기술하였으며, 이와 함께 신정왕후 조씨의 탄생, 세자빈 책봉, 왕대비 추존, 대왕대비 진호, 수렴청정, 승하, 수릉 부장 등에 관한 사실을 추기한 점이 다르다.
익종과 신정왕후의 합봉과 부묘에 관련한 기록으로 장서각에 지(誌) 2건과 의궤(儀軌) 2건이 전한다. 《수릉지(綏陵誌)》(2-3976)는 김상현(金尙鉉, 1811~1890)이 짓고 조동면(趙東冕, 1867~?)이 쓴 것이며, 《수릉지(綏陵誌)》(2-4460)는 산릉도감에서 제작한 것이다. 의궤청에서 제작한 『신정왕후부묘도감의궤(神貞王后祔廟都監儀軌)』(2-2253)와 부묘도감에서 제작한 『신정왕후부묘도감의궤(神貞王后祔廟都監儀軌)』(2-2254)는 모두 1892년에 제작한 의궤로, 신정왕후를 종묘에 부묘하는 각종 의식과 절차 등이 기록되었으며, 종묘에 봉안하는 옥책, 금보, 신주의 제작과정과 봉안절차, 그리고 별공작에서 설치했던 각종 건물과 부대시설, 반차도 등이 자세히 실려 있어 조선후기 종묘의례 및 궁중 풍속, 회화, 건축 등의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이 금석문과 관련하여 익종의 행장(行狀)과 지문(誌文) 등을 모아 놓은 책으로, 외할아버지인 김조순(金祖淳, 1765~1832) 등이 지은 『수릉성장(綏陵誠狀)』과 이상황(李相璜, 1763~1841) 등이 지은 『수릉지장(綏陵誌狀)』이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수릉성장』에는 익종의 행장을 비롯하여 《수릉지문(綏陵誌文)》, 《봉왕세자교명문(封王世子敎命文)》, 《죽책문(竹冊文)》, 《시책문(諡冊文)》, 《애책문(哀冊文)》, 《추숭상존호묘호옥책문(追崇上尊號廟號玉冊文)》, 《빈궁친제문(殯宮親祭文)》, 《수릉표석음기(綏陵表石陰記)》 등이 수록되어 있어 익종이 왕세자에서 국왕으로 추존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규장각에도 동일 내용의 『수릉성장』이 소장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효명세자의 국왕 추숭으로 인한 여러 호칭의 변화와 금석문의 수립 및 천봉․합봉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 왕실 금석문의 제작과 탁본, 장황방식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수릉성장(綏陵誠狀)』(장서각, 2-672) / / 『수릉지장(綏陵誌狀)』(장서각, 2-673) / / 『수릉지문(綏陵誌文)』(장서각, 2-3974) / / 『수릉성장(綏陵誠狀)』(규장각, 2071)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Ⅳ-朝鮮王室 正祖~高宗篇』/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6.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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