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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궁관왕묘비(景慕宮關王廟碑)

자료명 경모궁관왕묘비(景慕宮關王廟碑) 저자 관우(關羽), 이선(李愃), 이선(李愃),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343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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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현재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동관왕묘)
· 작성시기 1785
· 비고 2-5343
1785년(건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피전자 관우(關羽) 미상 - 219 촉(蜀) 무장(武將)
찬자 이선(李愃) 1735 - 1762 조선 왕족
서자 이선(李愃) 1735 - 1762 조선 왕족
전서자 미상
각자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묘정비(廟庭碑)
· 크기(cm) 292.4 X 120.4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1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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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예제예필(睿製睿筆) 관왕묘비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경모궁관왕묘비(景慕宮關王廟碑)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21대 국왕 영조(英祖)의 아들 사도세자의 예제예필 관왕묘비를 종이에 떠내고 족자로 장황하여 만든 금석문이다. 경모궁(景慕宮)은 사도세자의 묘호(廟號)로, 사도세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正祖)각 국왕으로 등극한 이후 사도세자에게 장헌세자(莊獻世子)라는 시호를 올리고, 묘소와 사당을 영우원(永祐園)과 경모궁(景慕宮)으로 고쳤다(정조 즉위년 3월). 그 뒤 묘소를 현륭원(顯隆園. 뒤의 융릉)으로 개칭하고 수원으로 옮겼다(정조 13년 1789년 10월).
사도세자가 이 금석문을 지은 시기는 1752년(영조 28)이며 비석이 세워진 시기는 1785년(정조 9)이다. 비문의 상단에는 ‘무안왕묘비명(武安王墓碑銘)’을 소전(小篆)으로 쓴 두전(頭篆)이 있다. 우측 상단에는 ‘경모궁예제예필(景慕宮睿製睿筆)’이라는 소전이 있어 찬서자(撰書者)를 밝혔다. 사도세자의 묘호를 경모궁으로 고친 해는 정조 즉위년이므로 이 비석은 사도세자 사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장서각에는 대한제국기에 중각(重刻)한 사도세자의 관왕묘비가 소장되어 있다. 사도세자는 1899년(광무 3)에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추존되었으므로 이듬해의 중각기(重刻記)가 붙어 있는 중각본에는 찬서자의 정보가 ‘장조의황제어제어필(莊祖懿皇帝御製御筆)’로 변경되어 있다.
비문은 1752년(영조 28)에 지어졌으며, 사도세자의 문집인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에는 「무안왕묘비명(武安王廟碑銘)」이라는 제명으로 실려 있다. 비문은 서(序)는 없고 명(銘)으로만 지어졌다. 우선 관우의 무공(武功)과 충의(忠義)를 찬양하고, 관우에 대한 중국 역대의 숭모(崇慕)와 조선 선조(宣祖) 때에 관왕묘를 세운 일을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부왕 영조와 명나라 신종이 사액한 뜻을 따라 자신도 명을 지음을 밝혔다. 끝으로 관우의 영령(英靈)이 조선에 강복하기를 빌었다. 비석은 방형 대석(臺石) 위에 비신을 얹고, 그 위에 옥개석을 얹은 모양이다.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제작하였고 높이는 228㎝, 폭 100㎝, 두께는 50㎝이다.
관왕묘(關王廟)는 중국 삼국시대 촉(蜀)의 장사 관우(關羽, 162년 경~219)의 충절과 무공을 기리고 향사(享祀)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관왕묘 또는 관제묘(關帝廟), 무묘(武廟)라고도 불린다. 관우는 남송의 악비(岳飛)와 함께 중국 역사상 충절을 지킨 대표적 인물로 일컬어져 왔으며, 송나라 이후로 관제묘를 세워 그의 절의를 숭배하였다. 명나라에서도 관우의 신(神)이 명 태조를 음조(陰助)한 공이 있었다 하여 '무안왕(武安王)'으로 봉해졌고, 청나라에서도 1585년(만력 13)에 '협천대제(協天大帝)'로 봉해졌다. 한편 그는 중국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성제군(關聖帝君)․관보살(關菩薩)’로 불리며 무운(武運)과 재운(財運)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관왕묘비는 ‘관우찬양비(關羽讚揚碑)’ 또는 ‘무안왕묘비(武安王廟碑)’라고 불린다. 숙종과 영조를 비롯해, 사도세자(思悼世子), 정조(正祖) 4대의 어제어필․예제예필(睿製睿筆)이 2기의 비석에 합각(合刻)되어 있다. 숙종의 어제어필 외에 영조의 어제어필 《현령소덕무안왕묘기(顯靈昭德武安王廟記)》가 1730년(영조 6)에, 사도세자 예제예필《무안왕묘비명(武安王廟碑銘)》이 1785년(정조 9)에 세워졌다. 이어 정조 또한 어제어필 《무안왕묘비명(武安王廟碑銘)》을 1785년(정조 9)에 지었다. 숙종과 영조의 글을 하나의 비석에 합각하고, 사도세자와 정조의 글을 다른 하나의 비석에 합각하여 동관왕묘(東關王廟)와 남관왕묘(南關王廟)에 각각 2기씩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석은 현재 남관왕묘에서는 볼 수 없고 동관왕묘에만 남아 있다.
조선에서 관왕묘의 건립은 선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정유재란에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관우 숭배가 주된 요인이었다. 최초의 관왕묘는 1598년(선조 31)에 숭례문 밖에 건립된 남관왕묘이다. 이것은 명나라 유격장(遊擊將) 진인(陳寅)이 관우 혼령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명나라의 사신․장수들과 조선 조정의 도움을 받아 세웠다. 한양에는 그 다음으로 동관왕묘가 흥인지문(興仁之門) 밖에 건립되었다. 1599년(선조 32)에 완공되었는데, 명나라 신종(神宗)이 ‘왜란 평정에 관우 혼령의 음조가 지대했으므로 공을 갚으라’는 조서(詔書)와 자금을 보내어 관왕묘 건립을 종용함에 말미암을 것이다.
한편 지방에서도 관왕묘가 건립되었다. 1598년 강진현(康津縣) 고금도(古今島)에, 1598년 안동(安東)에, 1598년 성주(星州)에, 1599년 남원(南原)에 각각 세워졌다. 고금도 관왕묘의 건립에는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이, 안동은 명나라의 진정영도사(眞定營都司) 설호신(薛虎臣)이, 성주는 명나라 장수 아국기(芽國器)가 발의하였다.
관왕묘 건립 이후 명나라의 장수들은 선조에게 관우를 경배하도록 권유하였지만, 선조 및 조선 조정은 관왕묘의 건립과 이에 대한 행례(行禮)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더욱이 동관왕묘 건립 당시 건립비용과 노동력의 손실이 막대하였고, 관련 관리의 비리 또한 큰 문제가 되었다.
관우 숭배가 공식화 된 시기는 숙종 때부터이다. 숙종은 교외로 거둥할 때 여러 번 관왕묘에 친임하였는데, 이 일을 선례로 삼아 후대의 왕들도 교외로 행차하면 자주 관왕묘에 친임하였다. 1709년(숙종 35)에는 임금의 관왕에 대한 재배례가 공식 의례로 확정되었다. 1739년(영조 15)에는 동관왕묘와 남관왕묘를 중수하였으며, 고금도, 안동, 성주 등 지방의 관왕묘 또한 숙종과 영조 등의 명에 의해 여러 차례 보수․이건하였다. 고종은 1901년(광무 5) 관우를 황제로 승격시키고 ‘관제(關帝)’로 칭하도록 하였다.
사도세자가 쓴 관왕묘비의 이본은 국립중앙도서관, 한신대학교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임진.정유재란 이후 조선에서 관우신앙의 유입과정과 왕실에서 추숭사업의 일단을 엿볼 수 있고, 민간신앙과의 접합과정까지도 엿볼 수 있다. 사도사제의 예제예필을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Ⅲ-朝鮮王室 肅宗~英祖篇』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5.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列聖御製』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2.
『서울금석문대관』1 서울시 편, 1987.
『조선금석총람』하 조선총독부 일한인쇄소인쇄, 1919.
「關王廟建置考」 김용국 『향토서울』25호,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5.
「19세기 후반 關王 숭배의 확산과 관왕묘 제례의 주도권을 둘러싼 東萊 지역 사회의 동향」 손숙경 『고문서연구』23호, 한국고문서학회, 2003.

집필자

성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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