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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선황제관왕묘비(正祖宣皇帝關王廟碑)

자료명 정조선황제관왕묘비(正祖宣皇帝關王廟碑) 저자 관우(關羽), 이산(李祘), 이산(李祘),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346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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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현재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동관왕묘)
· 작성시기 1785
· 비고 2-5346
1785년(건립)/1900(중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피전자 관우(關羽) 미상 - 219 촉(蜀) 무장(武將)
찬자 이산(李祘) 1752 - 1800 조선 왕족
서자 이산(李祘) 1752 - 1800 조선 왕족
전서자 미상
각자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묘정비(廟庭碑)
· 크기(cm) 290.3 X 114.9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1면
· 표기문자 한자
· 인장 1 (타원형, 세로12/가로6.8, 弘齋)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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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정조(正祖)의 어제어필(御製御筆) 관왕묘비(關王廟碑)를 1900년(광무 4) 중각(重刻)하여 종이에 떠낸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정조선황제관왕묘비(正祖宣皇帝關王廟碑)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22대 국왕 정조의 어제어필 관왕묘비명을 1900년(광무 4)에 중각하고 종이에 떠내어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금석문이다. 비명은 1785년(정조 9)에 지어졌으며, 관우의 신에게 드리는 제사의 과정과 장면을 형상화하였다. 『열성어제(列聖御製)』에는 「무안왕묘비명(武安王墓碑銘)」이라는 제명(題名)으로 실려 있다. 비석은 방형(方形) 대석(臺石) 위에 비신을 얹고 그 위에 옥개석은 얹은 형태이다.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228㎝, 폭 100㎝, 두께 50㎝이다.
관왕묘(關王廟)는 중국 삼국시대 촉(蜀)의 장사 관우(關羽, 162년 경~219)의 충절과 무공을 기리고 향사(享祀)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관왕묘 또는 관제묘(關帝廟), 무묘(武廟)라고도 불린다. 관우는 남송의 악비(岳飛)와 함께 중국 역사상 충절을 지킨 대표적 인물로 일컬어져 왔으며, 송나라 이후로 관제묘를 세워 그의 절의를 숭배하였다. 명나라에서도 관우의 신(神)이 명 태조를 음조(陰助)한 공이 있었다 하여 '무안왕(武安王)'으로 봉해졌고, 청나라에서도 1585년(만력 13)에 '협천대제(協天大帝)'로 봉해졌다. 한편 그는 중국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성제군(關聖帝君)․관보살(關菩薩)’로 불리며 무운(武運)과 재운(財運)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관왕묘비는 ‘관우찬양비(關羽讚揚碑)’ 또는 ‘무안왕묘비(武安王廟碑)’라고 불린다. 숙종과 영조를 비롯해, 사도세자(思悼世子), 정조(正祖) 4대의 어제어필․예제예필(睿製睿筆)이 2기의 비석에 합각(合刻)되어 있다. 숙종의 어제어필 외에 영조의 어제어필 《현령소덕무안왕묘기(顯靈昭德武安王廟記)》가 1730년(영조 6)에, 사도세자 예제예필《무안왕묘비명(武安王廟碑銘)》이 1785년(정조 9)에 세워졌다. 이어 정조 또한 어제어필 《무안왕묘비명(武安王廟碑銘)》을 1785년(정조 9)에 지었다. 숙종과 영조의 글을 하나의 비석에 합각하고, 사도세자와 정조의 글을 다른 하나의 비석에 합각하여 동관왕묘(東關王廟)와 남관왕묘(南關王廟)에 각각 2기씩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석은 현재 남관왕묘에서는 볼 수 없고 동관왕묘에만 남아 있다.
장서각에 소장된 정조의 관왕묘비는《정조대왕관왕묘비》 6점과, 《정조선황제관왕묘비(正祖宣皇帝關王廟碑)》1점이 있다. 앞의 6점은 1785년(정조 9)에 세워졌고, 뒤의 1점은 1900년(광무 4) 중각본이다. 탁본의 내용은 중각기의 유무를 제외하면 7저 모두 동일하다. 탁면의 최상단에 ‘무안왕묘비명(武安王廟碑銘)’이라는 두전이 소전으로 씌여 있다. 탁면 우측 첫 줄에는 ‘당저신장(當宁宸章)’이라 소전으로 쓰고, 그 아래에 타원형 인장 ‘홍재(弘齋)’가 새겨져 있어 정조 당대의 어제어필임을 밝혀놓았다. 이와 달리 중각본에서는 같은 자리에 ‘정조선황제신장(正祖宣皇帝宸章)’이라는 소전이 있고, 그 아래에 같은 인장이 새겨져 있다. 또한 중각본에는 족자의 좌측에 ‘광무사년경자음력육월 중각(光武四年庚子陰曆六月 重刻)’이라는 중각기가 첨부되어 있다.
정조의 관왕묘비는 서(序)를 병기하지 않고, 명(銘)과 부기(附記)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의 내용은 ‘서두(序頭)→ 관우신령의 강림→흠향(歆饗)→강복(降福)→승천(昇天)→영원한 향사(享祀)의 다짐’ 순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명의 구성은 이전의 관왕묘비에 비해 관우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이것은 정조가 서두에서 관우에게 제사를 드리는 까닭이 다만 그 충성을 높이는데 있지 않고, 관우에게 강복을 바라는 내용의 분량이 많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한편 4언 44구로 이루어진 명의 체제와 운자는 생부 사도세자의 《무안왕묘비명》과 동일하여 아버지 장조를 추모하는 정조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조선에서 관왕묘의 건립은 선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정유재란에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관우 숭배가 주된 요인이었다. 최초의 관왕묘는 1598년(선조 31)에 숭례문 밖에 건립된 남관왕묘이다. 이것은 명나라 유격장(遊擊將) 진인(陳寅)이 관우 혼령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명나라의 사신․장수들과 조선 조정의 도움을 받아 세웠다. 한양에는 그 다음으로 동관왕묘가 흥인지문(興仁之門) 밖에 건립되었다. 1599년(선조 32)에 완공되었는데, 명나라 신종(神宗)이 ‘왜란 평정에 관우 혼령의 음조가 지대했으므로 공을 갚으라’는 조서(詔書)와 자금을 보내어 관왕묘 건립을 종용함에 말미암을 것이다.
한편 지방에서도 관왕묘가 건립되었다. 1598년 강진현(康津縣) 고금도(古今島)에, 1598년 안동(安東)에, 1598년 성주(星州)에, 1599년 남원(南原)에 각각 세워졌다. 고금도 관왕묘의 건립에는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이, 안동은 명나라의 진정영도사(眞定營都司) 설호신(薛虎臣)이, 성주는 명나라 장수 아국기(芽國器)가 발의하였다.
관왕묘 건립 이후 명나라의 장수들은 선조에게 관우를 경배하도록 권유하였지만, 선조 및 조선 조정은 관왕묘의 건립과 이에 대한 행례(行禮)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더욱이 동관왕묘 건립 당시 건립비용과 노동력의 손실이 막대하였고, 관련 관리의 비리 또한 큰 문제가 되었다.
관우 숭배가 공식화 된 시기는 숙종 때부터이다. 숙종은 교외로 거둥할 때 여러 번 관왕묘에 친임하였는데, 이 일을 선례로 삼아 후대의 왕들도 교외로 행차하면 자주 관왕묘에 친임하였다. 1709년(숙종 35)에는 임금의 관왕에 대한 재배례가 공식 의례로 확정되었다. 1739년(영조 15)에는 동관왕묘와 남관왕묘를 중수하였으며, 고금도, 안동, 성주 등 지방의 관왕묘 또한 숙종과 영조 등의 명에 의해 여러 차례 보수․이건하였다. 고종은 1901년(광무 5) 관우를 황제로 승격시키고 ‘관제(關帝)’로 칭하도록 하였다.
정조 어제어필 관왕묘비의 이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임진.정유재란 이후 조선에서 관우신앙의 유입과정과 왕실에서 추숭사업의 일단을 엿볼 수 있고, 민간신앙과의 접합과정까지도 엿볼 수 있다. 정조의 어제어필을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대한제국기 정조의 황제 추존에 의한 비석의 중각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Ⅳ-朝鮮王室 正祖~高宗篇』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6.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列聖御製』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2.
『서울금석문대관』1 서울시 편, 1987.
『조선금석총람』하 조선총독부 일한인쇄소인쇄, 1919.
「關王廟建置考」 김용국 『향토서울』25호,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5.
「19세기 후반 關王 숭배의 확산과 관왕묘 제례의 주도권을 둘러싼 東萊 지역 사회의 동향」 손숙경 『고문서연구』23호, 한국고문서학회, 2003.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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