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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

자료명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 저자 심희(審希), 박승영(朴昇英), 행기(幸期), 최인연(崔仁渷), 성휴(性休)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357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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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상남도 창원 (현재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 작성시기 924
· 비고 25357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심희(審希)
박승영(朴昇英)
행기(幸期)
최인연(崔仁渷)
성휴(性休)

형태사항

· 유형 탑비(塔碑)
· 크기(cm) 172.7 X 100.0
· 판본 낱장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1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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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통일신라의 선사 진경대사(眞鏡大師)의 행적을 기린 비석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
[내용 및 특징]
통일신라 봉림산문(鳳林山門)의 개산인(開山人) 진경대사(眞鏡大師; 855~932)의 탑비를 축장으로 장황한 탁본첩이다.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는 원감(圓鑑) 현욱(玄昱)의 심인(心印)을 받은 제자로, 광주·설악·명주 등지를 두루 순력한 후 김해 호족 김인광(金仁匡)의 후원을 받아 봉림사를 중창하였다. 봉림사에 머무는 동안 경명왕의 초청으로 왕궁에 들어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理國安民之術]’을 설하여 왕으로부터 법응대사(法膺大師)라는 존호를 받기도 하였다. 진경(眞鏡)은 그가 입적한 후 경명왕이 내린 시호이며, 보월능공(寶月凌空)은 탑명이다.
본 비는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봉림리 봉리사지에서 1919년 경복궁으로 옮겼으며, 신라 말기 경명왕 7년(932)에 세웠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363호로 지정되었다. 원비의 전체 높이는 337㎝, 비신의 높이 171㎝, 비신의 너비는 99㎝이다. 비신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비의 제액은 ‘고진경대사비(故眞鏡大師碑)’로 3행 2자씩 쓰여 있다. 비제는 ‘유당신라국고국사시진경대사보월능공지탑비명병서(有唐新羅國故國師諡眞鏡大師寶月凌空之塔碑銘幷序)’로 시작되나 비신의 하변은 거의 수평으로 절단되어 그 부분의 원각자는 인멸되고 말았다. 인멸부의 문자는 구탁에 의한 것인지 이면에 보각되어 있고, 결실부 석재는 원형에 맞추어 신재료로 보완, 비좌에 감입하였다. 장서각 소장 탁본은 크기가 160㎝×98.8㎝로 6면 탁본을 전탁으로 환원하였다.
원탑비의 구성은 귀부와 비좌, 탁신, 그리고 지붕인 이수로 이루어졌다. 귀부는 거북이 모양으로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고, 등에는 귀갑문을 새겼다. 그 위에 놓인 비신에는 양측면에 화려한 운용문이 조각된 특징이 있다. 이수 중앙에 마련된 방형 제액 위쪽 좌측면으로 반룡 두 마리가 얽혀 보주를 두고 서로 다투는 듯한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각 조각들이 얕아지고 형식화된 경향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쇠퇴한 기운을 보여준다.
비문은 신라 경명왕이 직접 짓고 문하승 행기(幸期)가 쓴 글씨를 문하승 성휴(性休)가 새겼으며, 제액은 최치원의 사촌동생인 최인연의 글씨이다. 글자의 자경은 대략 2.1㎝이며, 구양순체에 가까운 해서체이다. 비신의 하단이 절단 일실되어 원래의 각자는 인멸되었고, 『해동금석원』에 실려 있는 전문은 파손 이전의 것으로 중요하다. 비의 이면에는 원래의 비문을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보각되어 있다.
비문은 주인공인 심희(審希)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작성한 행장(行狀)에 의해 왕이 직접 지었다.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비문의 본문 내용은 총 33행으로, 글자 수는 1,780여 자에 이른다.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내용은 크게 ①출생에서 출가 이전까지의 모습 ②현욱의 제자가 되고 그의 법을 이은 제자[嗣法弟子]가 되는 내용 ③송계에서 설악, 명주에 이르기까지 순유(巡遊) 수행과 진성왕의 부름을 받는 내용, ④봉림사의 중창과 교화 활동에 대한 내용 ⑤입적과 승탑을 세우기까지의 과정 등이 포함되고 있다.
피전자 진경대사의 속성은 김(金), 휘는 심희(審希)이다. 어려서부터 불사(佛事)를 좋아하였으며 9세에 출가하여 혜목산(惠目山) 현욱(玄昱)의 제자가 되었다. 868년(경문왕 8)에 현욱은 간략히 그에게까지 이어진 선법(禪法)의 맥을 설명하고 심희에게 심등(心燈:부처와 조사로부터 이어진 깨달음의 맥)을 전하였으며, 이 법을 믿고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한 뒤 입적하였다. 873년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명산을 순방하다가 888년(진성여왕 2)부터 송계산(松溪山)에 머물면서 좌선에 몰두하였는데, 도를 구하고자 하는 학인(學人)들이 모여들었다. 그 뒤 설악산으로 옮겨 선객(禪客)을 접하였고, 진성여왕이 궁궐로 청하자 강원도 강릉에 있는 탁산사(託山寺)로 은거하였다. 얼마 뒤 김해의 서쪽에 선림(禪林)이 있음을 듣고 경상남도 창원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진례성제군사(進禮城諸軍事) 김율희(金律熙)가 성안에 정진할 수 있는 처소를 지어 머물러 있게 하였다. 이 때 효공왕은 특사를 파견하여 경배의 뜻을 표하였다. 그곳은 수선(修禪)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으므로 선우(禪宇)를 창건하고 봉림사(鳳林寺)라 하였다. 지김해부진례성제군사명의장군(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明義將軍) 김인광(金仁匡)은 이때 귀의하여 보방(寶坊:사찰의 당우)을 건립하였다.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하나인 봉림산문은 이때부터 선풍이 크게 선양되었다. 경명왕은 그의 덕을 사모하여 청하고자 하였으나 쉽게 움직이지 않자 흥륜사(興輪寺) 승려 언림(彦琳)으로 하여금 후한 예로써 그를 모셔 올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응하여 918년(경명왕 2)에 경주로 가자 경명왕은 왕궁으로 맞아들여서 사자(師資:스승의 덕)의 예를 표하고 설법을 청하였다. 설법이 끝난 뒤 왕은 법응대사(法膺大師)라는 존호를 주었다. 그 뒤 봉림사로 다시 돌아와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나이 68세, 법랍 50세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진경대사(眞鏡大師), 탑호(塔號)는 보월능공(寶月凌空)이다.
비액은 쓴 최인연(崔仁渷; 868~944)은 신라 말 고려 초의 문신으로 최치원의 사촌동생이다. 885년(헌강왕 11)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909년(효공왕 13)에 귀국하여 집사성시랑서서원학사를 제수받았다. 935년(태조 18)에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가서 태자사부가 되고, 문한을 위임받았다. 본래 성품이 너그럽고 글을 잘하여 태자사부로 있을 때 궁원의 액호는 모두 그가 찬정한 것이었으며,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최치원 최승우와 함께 일대삼최라 불려 그의 문명이 짐작된다. 또한 서법도 남달리 아름다워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같은 비문의 글씨를 쓰기도 했으며, 낭원대사오진탑비명, 법경대사자등지탑비명 등을 짓기도 했다.
[자료적 가치]
신라말기 봉림산문 조사(祖師)의 계승 관계와 당시 선종사상의 성격을 연구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대사의 문하생 행기와 최치원의 사촌동생 최인연의 해서와 전서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韓國古代金石文綜合索引』 / 權悳永 / 학연문화사, 2002. 「鳳林寺址 發掘調査 槪報」 / 申昌秀 / 『考古歷史學志』16, 東亞大學校 博物館, 2000. 「新羅 哀莊王代 誓幢和上碑의 建立과 그 意義」 / 郭丞勳 / 『국사관논총』74집, 국사편찬위원회, 1997. 「昌原鳳林寺의 傳說과 由來」 / 朴相圭 / 『慶南鄕土史論叢』Ⅳ, 慶南鄕土史硏究協議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Ⅱ / / 國史編纂委員會, 1995. 『三國新羅時代佛敎金石文考證』 / 金煐泰 / , 民族社, 1992. 『韓國金石全文』古代篇 / 許興植 / , 亞細亞文化社, 1984. 「羅末麗初 禪宗의 社會的 性格」 / 崔柄憲 / 『史學硏究』25, 1975. 「九山의 眞鏡國師 寶月凌空塔碑銘考 -그릇된 풀이에 대하여-」 / 金昌鎬 / 『月刊文化財』75-8(32), 월간문화재사, 1974. 「麗初碑身側面의 雙龍高彫에 대하여」 / 姜仁求 / 『考古美術』106, 1970.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Ⅰ』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2004.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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