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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필첩(吳長筆帖)

자료명 오장필첩(吳長筆帖) 저자 정중원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서/서화 주제분류 개인/생활/비망기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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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서화
· 내용분류 개인-생활-비망기
· 소장처 문중-거창 초계정씨 동계종택
· 작성시기 0000
· 비고 영인정보 : 『古文書集成 23 : 居昌 草溪鄭氏篇』(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5)
『古文書集成 80 : 居昌 草溪鄭氏篇(正書本)』(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5)
· 소장정보 원소장처: 거창 초계정씨 동계종택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기록자 鄭重元 정중원 동계 정온의 4대손이다. 1695 - 1726

형태사항

· 크기(cm) 45 X 25
· 판본 필사본
· 장정 첩장
· 수량 3장
· 재질 종이
· 표기문자 한자

· 안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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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동계 정온의 친구 오장(오익승)의 필첩
동계 정온1613년 친구 오장에게 받은 ‘公平正大’라는 네 글자를 장첩하고, 그 사연을 적고, 이후 동계의 현손이었던 중원이 아버지 명으로 새롭게 장첩한 사연을 적고 있는 필첩이다.

집필자

1차 집필자 : 성봉현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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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吳翼承의 筆帖
公平正大
桐溪鄭蘊序
鄭重元跋
[내용 및 특징]
본 필첩은 3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1613년 겨울에 동계 정온이 친구 翼承 吳長에게 받은 “公平正大”라는 네 글자를 장첩한 것이고, 두번째 부분은 정온이 글씨를 받은 사연을 기록하였으며, 마지막 부분은 정온의 현손 정중원이 아버지의 명으로 첩장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본서는 일부 판독할 수 없으나 『동계집』에 실려 있어 보충할 수 있다. 미 판독 부분을 보충하여 번역하여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오호라, 이는 죽은 친구 吳翼承의 수필이다. 계축년(1613) 겨울에 내가 대궐의 부름을 받고 金陵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익승서울에서 남쪽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객관에서 우연히 만났다. 다음날 장차 헤어지려고 할 때 익승이 붓을 취하여 멋대로 “公平正大”라는 네 글자를 써서 주었다. 그리고 해를 지나 내가 죄를 얻어 남쪽으로 유배을 갔고, 익승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 海西로 옮기게 되었다. 당초 갑작스러운 일이라 평일 보던 문자를 거의 다 읽어버렸는데, 홀로 이 네 자만 보따리 안에 남아 있었다. 이처럼 우연이 나오는 것을 혹시 神物이 보호하여 감추어 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벽에 붙여놓고 천 리 밖에 떨어져 있는 얼굴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익승이 사망하였다. 그 사람을 생각하나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벽에 붙여놓은 것이 더욱 귀중하다. 벽지를 잘라내어 물로 씻고 칼로 먼지와 그을음을 긁어내니 완연한 心劃이 흡사 먹이 마르지 않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마땅히 서첩에 실어서 항상 보기로 하였으니, 오히려 원빈에게 허여한 것보다 낫다 하지 않겠는가. 익승은 평생의 논의가 公正함을 주장하고 偏黨을 세우지 않는 것을 힘썼으니, 이 네 글자는 그가 평소에 愛用하던 것으로 추급하여 나를 면려시킨 것이다. 내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오히려 다리보다 존귀한 것이 있다. 이 네 글자를 일생 동안 적용함에 어디를 가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니, 나의 친구가 절차탁마의 도움을 준 것이 생전이나 죽어서나 간격이 없다 하겠다. 그러므로 익승은 죽지 않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내가 이 서첩에 대하여 감히 아녀자처럼 悲感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에게 말해 준 뜻을 저버리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면려할 것을 기약하려는 것이다. 만력 무오년(1618, 광해군10) 가을 7월 16일에 桐溪 鼓鼓子는 기록하다.
그리고 정중원이 장첩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집에 소장한 吳正言公 ‘公平正大’ 네 글자의 첩은 나의 증조고 동계공이 일찍이 귀중히 여기던 것이다. 이 첩이 세월이 오래되어 헤어지고 훼손되어 重元이 아버님의 명으로 새로운 첩으로 改粧하였다. 또한 옛 상자 속에서 증조부(정온)의 ‘戊午栫籬中’이라는 수필 초고 서문을 그 후에 붙였다. 吳公의 이름은 이고, 字는 翼承이고, 스스로 호를 思湖라 하였으며, 德溪 선생의 아들이다. 무오(1618)년 후 66년 갑자(1684) 6월 1일 글로써 알게 한다.
[자료적 가치]
동계 정온오장과 교유관계를 알 수 있고, 자료의 전승과정도 이해 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23:居昌草溪鄭氏篇 影印本』 韓國學中央硏究員, 1995
「조선후기 籍沒 ‘位土’ 회복과정-居昌 草溪鄭氏 고문서를 중심으로-」 김성갑 『고문서연구』 28, 한국고문서학회, 2006
「용천정사중건과 위전환급을 탄원한 진정서」 金泰淳 『경남향토사논총』2, 경남향토연구협의회, 1993
「거창지역의 향토사 관련자료와 그 역사적 성격」 박병련·김학수 『거창의 향토문화와 고문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거창문화원, 2001

집필자

1차 집필자 : 성봉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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