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남선생연보(市南先生年譜)
· 원문이미지
· PDF서비스
·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
· 작성시기 | 1756(영조 32년) |
· 청구기호 | K2-773 |
· 마이크로필름 | MF35-1870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
유상기(兪相基) |
형태사항
· 크기(cm) | 30.6 X 19.7 |
---|---|
· 판본 | 목판본(木版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1책(冊) |
· 판식 | 반곽(半郭) 22.8×15.6cm |
· 인장 |
李王家圖書之章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17세기 문신이며 학자인 市南 兪棨(1607~1664)의 연보이다.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市南先生年譜’, 版心題는 ‘市南年譜’이다. 표지 서명의 하단에는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권수에는 世系圖가 있는데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본 도서에는 간기가 없으나 충남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같은 판본에는 1775년(영조 51)에 작성된 跋文이 있어 본 도서의 간기를 알 수 있다.체제 및 내용
유계의 손자인 兪相基(1651~1718)가 정리하고 5대손인 兪纘柱가 완성하였다. 유찬주의 발문은 1775년에 작성되었으나 연보의 마지막 기사는 “丙子(1756)년 10월에 禮官을 보내 致祭하였다.”는 것이므로 그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권수에 世系圖가 있어서 유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보의 기사에서는 계사년(1713) 이후 『가례원류』의 간행에 관한 기사가 매우 상세하게 정리된 점이 특징이다. 5대손 유찬주의 발문이 누락되어 있다. 장판은 충남 부여군 임천의 七山書院에 소장되어 있었다.특성 및 가치
연보의 사후 기록이 18세기 초반 『가례원류』 간행에 관한 유상기와 尹拯(1629~1714) 간의 갈등이 주된 내용이어서 노론과 소론의 분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사건이 노론의 일당 정권을 성립하게 만든 1716년(숙종 20) 丙申處分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유상기가 편집하여 1718년에 간행한 『癸巳往復書』와 함께 당시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기초 자료로 평가된다.집필자
이동인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