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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암효행록(慕菴孝行錄)

자료명 모암효행록(慕菴孝行錄) 저자 이건영(李健榮)
자료명(이칭) 慕菴孝行錄 저자(이칭) 李健榮(朝鮮) 等編
청구기호 K2-734 MF번호 MF35-1081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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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5(광무 9년)
· 청구기호 K2-734
· 마이크로필름 MF35-108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이건영(李健榮) 등(等)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1.5 X 21.5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전사자혼입목활자(全史字混入木活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3권(卷) 3책(冊)
· 판식 반곽(半郭) 23.7×17.0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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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세기 후반의 인물인 李顯惺(1834~1881)의 효행을 기리는 글을 모은 자료이다.
체제 및 내용
이현성경주이씨知退堂 李廷馨의 9대손이다. 8세에 스승에게 『孝經』을 배웠는데, 曾子처럼 事親하면 된다는 스승의 말을 들은 뒤부터 효의 실천을 다하였다. 부친이 죽자 楊州에 장사 지낸 뒤에 추위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일에 한 번씩은 서울에서 양주까지 성묘하다가 3년상이 끝나자 그도 죽었다. 이에 李根秀는 기문에서 효도를 다하자 그 몸도 끝났다고 상찬하였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자 秘書院丞에 증직되고 旌閭의 은전이 내려졌다. 본 도서는 그의 효행을 기리고 증직과 정려를 축하는 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족과 친척들의 글뿐만 아니라 정부 관료들의 글이 수록되었다. 1904년(광무 8)에 ‘孝行卓異’로 증직과 정려의 은전이 내려지고 이듬해에 아들 李健榮의 주도로 본서가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1904년 12월에 증직과 정려가 결정되었고, 1년도 안 되어 300명이 넘는 정부 인사들의 글을 받아서 1905년에 본 도서를 간행한 셈이다.
권1은 아들 이건영이 지은 「先考贈秘書院丞府君行狀」, 1904년 10월 中署 寬仁坊 寺洞契에 거주하는 進士 李貞宰 등이 漢城府 判尹에게 올린 연명 「上書」 및 11월 漢城部 判尹 閔景植掌禮院 卿 趙定熙에게 올린 「漢城府報告書」, 11월 진사 이정재 등이 올린 연명 「상서」 및 「內部照會」, 12월 진사 이정재 등이 연명하여 太常卿에게 올린 「상서」 및 장례원 경 조정희내부대신 李容泰에게 올린 「奏本」, 「官報第三千五號」, 「奏本」 및 「掌禮院立案」, 「訓令第五號」 등 증직과 정려를 신청한 행정 문서를 정리하였다. 다음은 「旌閭」, 度支部 司稅局長 陸軍副領 이건영이 지은 「先考贈秘書院丞府君旌閭上樑文」, 둘째 아들 前 行丞政院 同副丞旨 李寅榮이 지은 「先考贈秘書院丞府君孝行錄跋」, 손자 駐外公使館 待命參書官 李圭容과 前 行內部 主事 李圭灐이 지은 「王考贈秘書院丞府君孝行錄識」 등이 수록되어 있고, 이하 족손 및 족질 등 친인척 26명의 글과 閔泳煥, 朴定陽, 申箕善, 李完用 등 56명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李重夏, 李南珪 등 130명이며, 권3는 133명의 글을 수록하였다. 글의 편집은 지위고하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보이며, 중앙 관서뿐만 아니라 지방관을 역임한 전현직 관리를 망라했다.
특성 및 가치
19세 후반 이현성의 효행에 대한 정부의 대응 양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광무 연간의 행정 문서가 전재되어 있어서 당시의 문서와 행정의 지휘 체제를 이해하는 데도 참고할 수 있다.

집필자

이동인
범례
  • 인명
  • 관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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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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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