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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지(箕子志)

자료명 기자지(箕子志) 저자 윤두수(尹斗壽), 정인기(鄭璘基)
자료명(이칭) 箕子志 저자(이칭) 尹斗壽(朝鮮) 編 , 윤두수(조선) 편(尹斗壽(朝鮮) 編)
청구기호 K2-174 MF번호 MF35-129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雜史類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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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79(고종 16년)
· 청구기호 K2-174
· 마이크로필름 MF35-129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윤두수(尹斗壽)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3.7 X 21.5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전사자(全史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9권(卷) 3책(冊)
· 판식 21.4×14.7cm
· 인장 帝室圖書之章, 舊宮,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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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79년(고종 6) 鄭璘基·申聖朝 등이 1580년(선조 13) 尹斗壽(1533~1601)가 편찬한 『箕子志』의 자료를 증보하고 편집, 교정하여 중간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箕子志’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天·地·人’으로 표기되어 있다. 표지는 황색 바탕에 梨花紋이며, 五針眼으로 線裝되었다. 卷末의 刊記를 통해 본 도서가 1879년에 중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 ‘帝室圖書之章’이, 권수제면 우측 하단에는 ‘舊宮’이 날인되어 있다. 제1책 범례 뒤에는 ‘箕子相’이 있으며, ‘箕子手筆’과 ‘答微子圖’ 등의 삽도가 있다. 제3책의 권말에는 編輯諸生의 명단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1580년(선조 13) 윤두주가 편찬한 같은 이름의 책을 정인기평양 지역의 선비들이 각종 經史와 제가의 기술 등을 모아 증보한 것이다. 서문과 발문은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奇正鎭(1798~1879)과 宋秉璿(1836~1905)이 작성하였다.
체제는 『孔子世家』와 『孔子通記』를 따랐다. 본문 시작 이전에 箕子象과 기자의 필적, 중국 殷나라 말기 폭정을 자행하는 紂王을 대신해 기자微子를 임금으로 세울 것을 권하는 勸立微子圖를 비롯해 기자조선으로 넘어와 다스리는 그림인 治朝鮮圖 등의 도설과 기자의 세계도 등을 수록하였다. 「重刊箕子誌序」에 이어, 권1에는 洪範을, 권2에는 기자에 대한 전기 및 각종 경사에서 뽑은 그와 관련된 기록을 기술하였고, 권3에는 기자에 대한 역대 왕조의 祀典과 치제문 및 御製, 권4~7에는 기자와 관련된 각종 說과 辯, 記, 序 등을 수록하였다. 특히 권7의 說에는 韓百謙(1552~1615)의 「箕田遺制說」, 許筬(1548~1612)의 「箕田圖說後語」를 수록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 토지 개혁의 논리 중 하나로 제시된 井田과 관련된 것으로 주목된다. 권8과 권9에는 윤두수의 「平壤志序」, 南龍翼(1628~1692)의 「墓碑銘幷書」 등 기자와 관련된 찬술을 모아 기록하였다.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編輯諸生」을 통해 간행 과정에서 發文·校正·蒐集·繕書·監印 등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개항으로 외국과 교류가 추진되던 시기에 편찬되어, 유교적인 질서를 강화함으로써 국가를 유지하려는 유자들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조선 후기 箕子 존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이 시기 사상사와 사학사를 해명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기자조선에 대한 인식의 변천-고려부터 한말까지의 사서를 중심으로」, 박광용, 『한국사론』 6, 1980.

집필자

이근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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