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고종 29) 6월 왕세자 이척(李坧)의 두 번째 정청(庭請) 계본(啓本)
자료명 | 1892년(고종 29) 6월 왕세자 이척(李坧)의 두 번째 정청(庭請) 계본(啓本) | 저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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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이칭) | 1892년 왕세자(王世子) 척(坧) 계문(啓文) , 왕세자(척)백관정청(재)(王世子(坧)百官庭請(再)) , 왕세자(척)백관정청재(王世子(坧)卛百官庭請再) | 저자(이칭) | 미상(未詳) , 국왕:고종|황태자 척 | ||
청구기호 | RD00204 | MF번호 | MF35-4653 | ||
유형분류 | 고문서/주의류/정청계품(庭請啓稟) | 주제분류 | 국왕·왕실/의례 | ||
수집분류 | 왕실/고문서 | 자료제공처 | 장서각(SJ_JSG) | ||
서지 | 장서각 고문서자료관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 해제 | 장서각 | ||
원문텍스트 | 장서각 장서각기록유산 | 이미지 |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고문서자료관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
· 원문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유형분류 | 주의류(奏議類)-정청계품(庭請啓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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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분류 | 국왕·왕실-의례 |
· 서비스분류 | 왕실고문서 |
· 작성시기 | 1892년(高宗 29)(壬辰六月十八日 庭請再次) |
· 청구기호 | RD00204 |
· 마이크로필름 | MF35-4653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형태사항
· 크기(cm) | 57.1 X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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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량 | 1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1892년(고종 29) 6월 18일, 왕세자(王世子) 이척(李坧)이 고종에게 존호 가상과 경연 설행을 요청한 두 번째 정청(庭請) 계본(啓本)이다.서지사항
체제 및 내용
1892년(고종 29) 6월 18일, 왕세자(王世子) 이척(李坧)이 백관을 거느리고 정청(庭請)한 두 번째 계본(啓本)으로서 고종과 왕후을 위해 존호 가상과 경연 설행을 요청하였다. 그 이유는 당년 고종의 연세가 망오(望五)이고 즉위 3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계본 뒷부분에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고종의 비답(批答)이 굵은 글씨로 씌어 있다. 왕세자는 이 사안과 관련하여 동년 6월 16일에 이미 상소를 올렸거니와 6월 17일에 첫 번째 정청을 올렸고, 6월 18일 당일에도 두 번째와 세 번째 정청을 연거푸 올렸다. 본 문서는 이 가운데 두 번째 정청 계본이고, 장서각에 소장된 〈02-01-0205〉는 첫 번째 정청 계본이다. 문서 뒷면에는 ‘임진육월십팔일(壬辰六月十八日) 정청재차(庭請再次)’라고 적힌 첨지가 붙어 있는데 정청 시기와 차수를 기입한 것이다.특성 및 가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 원문텍스트
[원문:RD00204_001]
王世子臣坧率百官庭請再啓曰伏以臣聞自古聖賢之君久臨寶位永享天壽則必摭其事實述其善美闡颺之
崇顯之盖以其出於人情之自然合於天理之固然而玉冊揚號未必爲張大瑤觴上壽
未必爲豐豫也夫何有
大聖人謙挹之德也哉今臣所以祗率百官齋沐控籲而蕪辭拙而未格神功斂而不有臣誠
徊徨鬱抑益復靡措竊伏惟覆燾如天地照臨若日月巍勳煥章等百王而罕媲
垂萬世而有辭若乃
太室追彝之屢擧 徽烈彌光亮陰 孝思之無竆情禮必恔繼序之孝大矣警灾異而
减常膳恤困竆而頒帑金敬天之誠愛民之實至矣盡矣崇儒重道登明選公作人
之化盛矣憂勤宵旰咨訪寒暑聽治之道極矣機務之叢繁而湊萬象於瑤
鏡國勢之岌嶪而回累卵於磐泰聖莫尙於我
父王殿下矣厚坤承乾標正位於元吉回否爲泰衍 寶籙於靈長柔敎穆宣於宮闈陰
功丕冒於陬澨樛葛綏福周關雎之所以興練綈昭儉漢濯龍之未有盛治化之所助
者深而女史之不勝書則德莫隆於我
母妃殿下矣是以惟天騭佑申錫無疆諸福休禎連年荐湊而今年卽
聖壽之望五旬也 御極之三十年也兩慶之幷臻一歲是千一盛會往牒罕有而
列聖朝所未覩也則我
兩聖殿下闡颺崇顯之禮寔晠代美規我家成憲也上以答皇穹用休之眷下以慰臣
民同忭之情是義也質聖人而無疑貽後昆而爲謨矣撝謙之 聖德非不欽仰
而若使當行之禮未行於今日則邦禮闕矣子職虧矣在臣懇迫之忱尤當如何
[원문:RD00204_002]
哉參情制義允叶典則以我殿下燭理之明止慈之念必不待覼縷而勉循矣伏願
聖慈深軫節文之宜行曲諒廷議之莫遏亟
賜 允兪千萬至祝
答曰知道予則曰不必然之擧而爾則謂不可已之事乎予之所以
靳許者亦豈無斟量而然也爾其諒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