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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덕수궁인존(德壽宮印存)

기본정보

류    :
자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907 / 융희 1년
형태사항    :
크기: 26.8×15.7cm / 판본: 검인본(鈐印本) / 장정: 절첩장(折帖裝) / 수량: 1책(冊)(19절(折))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558
M/F번호    :
MF35-95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高宗(1852~1919)이 사용했던 인장의 印影을 수록하고 釋文을 곁들인 印譜이다.
서지사항
558-1~558-4까지 네 본이 소장되어 있다. 558-1본은 나무재질을 황색 비단으로 감싸 장황하였고, 붉은 테두리를 두른 흰 비단 제첨 위에 “德壽宮印存”의 서명을 필사하였다. 한 장에 1~7果의 鈐印이 수록되어 있고, 각 鈐印 아래에 먹으로 해서를 써서 표시하였다. 558-2~558-4본은 짙은 황색 종이 표지에 흰 종이 제첨이 붙어있고, 鈐印 아래에 따로 해설은 달지 않았다. 558-3본의 경우 뒤쪽 5張(鈐印 30果)과 뒤표지가 누락되었다. 558-2본과 558-4본은 558-1의 마지막 면이 없다. 李王家圖書之章은 558-2본과 558-3본에만 보인다.
체제 및 내용
고종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慶運宮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이 곳에서 십여 년간 머물렀다. 그리고 1907년 황태자에게 양위하여 太上皇이된 이후에도 계속 머물렀다. 이때 궁의 이름이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뀌었으므로 이 인보의 제작 시기는 1907년 이후로 볼 수 있다.
인장은 내용에 따라 名印, 字印, 號印, 收藏鑑賞印, 詞句印 등으로 대별되는데, 그 종류는 구분되지 않은 채 섞여서 수록되어 있다. 서체는 전서가 대부분이며 예서도 더러 있다. 이 중 ‘煮茶文香館’ ‘紅豆吟館’ ‘紅豆山莊’ ‘梅花書屋’ 등은 헌종의 인장을 모은 『寶蘇堂印存』에도 같은 종류가 있어 두 인보간의 영향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梅花書屋’이라는 인장은 조선후기에 梅花書屋圖가 유행한 시대적 경향과 연관하여 흥미로운 예이다. 이밖에 詞句印으로는 經史句, 鑑戒句를 새기거나 詩意나 翰墨趣向을 보이는 예가 많다. 예를 들어 ‘爲善最樂’은 『後漢書』 東平王蒼傳에 나오는 구절로 조선중기 대표적인 서화 수장가였던 朗善君 李俁가 자신의 수장품에 즐겨 찍었던 사구인이기도 하다.
특성 및 가치
본 도서는 현존하는 인보로서 드물게 국왕의 인장을 다량으로 모아 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미술사적으로는 각 인형의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觀文閣書畵記, 欽文閣書畵記, 怡園書畵 등 서화를 보관한 궁궐 내 전각의 명칭을 새긴 인장이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또한 刻法이 다양하여 19세기 말 20세기 초 篆刻風을 두루 살피는데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성인근, 『조선시대 印章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이성미 외, 『조선왕실의 미술문화』, 대원사, 2005.
王崇人, 『中國書畵藝術辭典·篆刻卷』, 陜西人民美術出版社. 2002.
韓天衡, 『中國篆刻大辭典』, 上海辭書出版社, 2003.
집필자
성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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