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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병연행록(을병연녹(乙丙燕行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201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홍대용(洪大容) 찬(撰)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8.2×19.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0권(卷) 20책(冊) /
청구기호    :
K2-4532
M/F번호    :
MF35-713~714, 931~932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65년(영조 41) 11월부터 1766년(영조 42) 4월에 걸쳐 洪大容이 동지사행의 서장관인 계부 洪檍을 따라 북경에 다녀온 170여 일의 경험을 일기체로 서술한 한글 연행록이다.
서지사항
 권수제는 ‘을병연녹’이고, 표제와 서근제는 ‘燕行錄’이다. 표지 장황은 앞표지는 연녹색이고 뒤표지는 진한 녹색으로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장정은 얇은 주황색 실을 두 가닥으로 해서 선장하였다. 표제는 사주쌍변의 검은색 테두리를 한 흰색 첨지에 붓으로 쓴 것이 붙어 있다. 앞표지 우측에 같은 형태의 첨지에 권수를 적어놓았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백지에 10행 16~18자에 맞추어 반흘림으로 반듯하게 쓴 한글본이다. 고유명사에는 붉은 원점을 우측에 찍어 표시하였다. 지질은 밝은 흰색에 표면이 매끈한 저지를 사용하였다. 책수는 20권 20책이다.
체제 및 내용
 1765년 동지사행의 정사는 順義君 李烜, 부사는 金善行, 서장관은 홍억이었으며, 홍대용은 계부 홍억의 자제군관으로 사행에 참여하였다. 홍대용은 평생 한번 중국에 가보기를 원하여 매일 근력과 실력을 계량하며 역관을 만나 직접 중국말을 배울 정도로 중국에 대한 열망이 컸다고 기술하였다. 따라서 필담으로 엮은 다른 사행록에 비해 중국어 대화를 더한 홍대용의 사행록이 중국 견문의 구체성을 더하였음에 틀림없다.
 동지사 일행이 1765년 10월 22일 영조에게 사폐한 후 11월 2일 서울을 출발하고 11월 26일 의주에 머물 때까지 중국으로 향하는 마음과 별장시문, 국내 노정에서 방문한 사적에 대해 약술하였다. 특히 평양숭령전단군동명왕의 위판을 봉안한 사당이었고, 숭인전기자의 위판을 봉안한 곳으로 3점의 초상을 걸었는데, 복식이 조선과 달라 은나라 복식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무열사명나라 병부상서 석성, 제독 이여송, 양원·이여백·장세작 등 장수를 배향하는 곳이었다.
 홍대용중국 노정 기록에는 물질적으로 번영하고 있는 청나라의 모습과 아울러 새로운 시대의 사상적 향방에 대한 각성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다. 또한 연행의 견문과 관련하여 『김가재일기』를 상고한 내용이 본문에 자주 등장하여 홍대용이 연행에서 김창업의 연행록을 참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1765년 11월 27일부터 12월 27일까지 압록강을 건너 북경에 도착하기까지 거쳐간 노정에서는 견문한 음식, 숙소, 복식, 악기, 상점의 물건, 수레 등 풍속에 대해 상술하였다. 특히 책문에 대해 두 산 사이에 나무 살장을 늘어 세워 작은 나무를 가로매어 인마를 통제하고 중앙에 한 칸 집을 세워 널문을 낸 곳이라며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12월 3일 초하구 길에서 만난 인물과의 대화에서 청나라 八旗軍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얻을 수 있었다. 12월 5일에는 낭자산에서 왕가의 집에 따로 초대되어 후한 대접을 받았다. 12월 9일에는 심양 황궁을 구경한 후 궁궐 문 밖의 도관 神祐宮을 방문하였는데, 황제의 장수를 기도하는 곳으로 강희제건륭제의 어필이 현판으로 걸려 있었다.
 북경에 체재한 12월 27일부터 이듬해 1월 30일까지 주요 방문지는 공묘와 국자감, 천주당, 유리창, 옹화궁, 법장사, 오룡정, 홍인사, 서길사청, 몽고관, 융복사 등이었다. 12월 28일 예부에 자문을 올릴 때 군관인 홍대용도 동행하였다. 조선사절단 정관 중 북경에서 사행 정원을 30명으로 정하였는데, 삼사와 역관 그리고 군관 중 加資가 높은 사람을 뽑아 채웠다고 기술하였다. 관상감, 사자관, 의원, 화원은 가자가 있더라도 역관과 군관을 먼저 채운다고 한 점이 주목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홍대용도 정관에 포함되어 1월 1일 태화전 조참에 참여하였다. 1월 9일과 13일, 19일, 2월 2일에 남천주당에서 선교사 劉松齡(August von Hallerstein)鮑友官(Anton Gogeisl)을 만나 대화한 일, 1월 24일 동천주당을 방문하여 천문도, 천주당의 서양화, 서양의 천체 관측기구를 구경한 일 등 서학에 대한 관심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홍대용『燕記』중국 내 노정과 북경에서 체류하는 동안의 견문을 항목별로 나누어 기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 1766년 2월 1일부터 29일까지는 주로 북경의 천주교당에서 만난 선교사, 남소관건정동을 왕래하면서 만난 嚴誠·陸飛·潘庭均항주 출신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문답한 것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엄성과의 만남은 2월 3일 건정동 천승점에서 비롯되었는데, 서로 인편에 서신을 왕래하고, 관소와 건정동을 오가며 학문적 교유를 돈독히 하였다. 특히 천애지기로 맺어진 엄성홍대용의 교유는 조선중국의 문인 교류 및 우의를 대표하는 만남으로 회자되었다. 이를 토대로 『杭傳尺牘』이 저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3월 1일부터 30일까지는 북경을 출발하여 귀국길에 오르는 과정을, 4월 1일부터 7일까지는 책문에서 머문 내용과 4월 8일 책문을 나와 12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이르고 4월 27일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노정을 차례로 기술하였다. 홍대용 일행의 사행 여정은 총 170여 일로, 왕복 거리는 6,200여 리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홍대용의 연행 노정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으로, 홍대용의 연행 관련 기록은 장서각 소장본 외에도 숭실대학교박물관에 10권 10책으로 된 국문본 『湛軒燕錄』과 한문본 『湛軒燕行記』가 각각 소장되어 있고, 규장각에 한문본 『湛軒燕記』 6권 6책이 전한다. 『담헌연기』는, 홍대용의 문집 『담헌서』북경에서 사행 견문을 항목별로 기술한 『燕記』중국 항주 지식인과 나눈 필담과 편지를 엮은 『항전척독』과 내용이 유사하지만, 제책 및 편차가 약간 다르고 賈知縣·太學·觀象臺·天象臺·正朝朝參 같은 주요 내용이 누락되었다.
 본서는 국문 기행문학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한문 식자층의 전유물이던 사행록이 국문 독자의 교양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문본과 내용이 대동소이하지만, 한문본보다 견문 기록이 생생하고 인물 형상화가 뛰어나며 양적으로도 노정 전체의 견문을 총체적으로 재현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본서는 18세기 연행록의 대표작인 김창업『노가재연행록』을 참조하여 박지원『열하일기』의 기술 방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김태순, 박성순 옮김, 『산해관 잠긴 문을 한손으로 밀치도다』, 돌베개, 2001.
소재영, 조규익 외, 『주해 을병연행록』, 태학사, 1997.
정훈식 옮김, 『을병연행록-18세기 장편 국문 연행록의 현대어 완역본-』 1·2, 도서출판 경진, 2012.
조규익·소재영, 「『湛軒燕行錄』 硏究」, 『東方學志』 97집, 1997.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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