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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일록(燕行日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99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한태동(韓泰東), 한지(韓祉) 찬(撰)
작성시기    :
1714 / 숙종 40년
형태사항    :
크기: 28.5×20.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530
M/F번호    :
MF35-995
기록시기    :
1714年(肅宗 40)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682년(숙종 8) 7월 진하겸사은진주사행의 서장관 韓泰東(1646~1687)과 1713년(숙종 39) 11월 동지사행의 서장관 韓祉가 각각 기록한 兩世 연행록의 합본이다.
서지사항
 본문 첫 장의 서명은 ‘燕行日錄’이고, 표제는 ‘兩世燕行錄’이고, 서근제는 ‘燕行錄’이다.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것이고, 주황색 실로 선장하였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백지에 12행 24자에 맞추어 해서로 적어놓았다. 부분적으로 쌍행의 주석이 달려 있다. 지질은 뒷면이 비치는 얇은 楮紙를 사용하였다. 책수는 63장 1책이다. ‘共二’가 적혀 있으므로 본래 2책이겠지만, 현재는 1책으로 되어 있다. 본문 첫 장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표제는 ‘兩世燕行錄’이며, 권수제는 ‘燕行日錄’이다. 표제에서 ‘兩世’라고 한 이유는 한태동한지 부자 양세의 연행을 각각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본서는 1682년 7월 영창군 李沉사은 정사, 尹以濟를 부사, 韓泰東을 서장관으로 하는 진하겸사은진주사행을 기록한 연행록과 1713년 11월 정사 趙泰采, 부사 金相稷, 서장관 韓祉의 동지사행을 기록한 연행록의 합본이다.
 한태동이 쓴 『연행일록』1682년 7월 진하겸사은진주사행을 배경으로 기술한 것으로, 1681년 이 남방에서 세력을 유지하던 오삼계의 손자 오세번을 토평하고 두 태후의 존호를 올린 것에 대해 진하하고 조선의 범월민들에 대한 罰銀을 황제가 면제해준 것에 대해 파견하는 사행이었다. 한태동 일행은 1682년 7월 25일 책문에 도착한 후 인마를 점고하고 봉황성 찰원에서 유숙하였다. 이어 연산관, 첨수참, 청석령, 낭자산, 요동을 지나 십리보에 이르고, 8월 5일 심양 남문으로 들어가 찰원에서 유숙하고 방물을 교부하고, 8월 11일 광녕을 지나 십삼산, 대릉하, 송산보, 행산보를 거쳐 8월 15일 조씨패루를 지나 사하, 8월 17일 고령역, 정녀묘를 유람하고 산해관에 도착하였다. 8월 20일 이제묘, 8월 23일 고려보를 지나 8월 24일 계주에서 유숙하였다. 8월 27일 북경조양문으로 진입하였다. 8월 29일 예부에 자문을 정납하였다. 9월 14일 1673년 이후 조공하는 안남 사신들의 공로에 대해 1682년 2월 복건에서 배로 통주에 이르는 수륙 약 80리 거리라고 하여, 당시 사신이 가져온 문서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소개하였다. 8월 17일 방물을 정납하였다. 8월 29일 皇曆賚咨官 金瑗이 관소에 도착하였다. 10월 1일 자금성 오문 밖에 나가 九叩頭禮를 행한 후 입궐하여 領賞하였다. 10월 4일 관소에서 상마연을 베풀었고, 10월 9일 예부에서 회자문을 받고, 10월 10일 북경을 출발하였다. 11월 7일 책문에 도착하였고, 11월 8일 압록강을 건넜다.
 한태동의 아들 한지가 쓴 『연행일록』1713년 11월 동지사행을 배경으로 기술되었다. 11월 26일 압록강을 건너 11월 28일 책문에 도착하였다. 12월 7일 심양에 도착하여 세폐를 교부한 후 12월 12일 광녕, 12월 15일 탑산보, 12월 18일 고령역을 지나 강녀사를 유람하고, 산해관에서 유숙하였다. 12월 19일 망해정을 유람한 후 12월 20일 무녕현, 12월 21일 청절사를 방문하였다. 12월 24일 계주에 도착하였고, 12월 27일 통주를 지나 북경에 이르렀다. 당시 사행은 옥하관이 아닌 大佛寺에서 유숙하였다. 1714년 1월 1일 조참례에 참여하였다. 2월 방물을 먼저 정납하고, 2월 5일 세폐를 정납하였다. 2월 12일 예부의 하마연에 참여하였다. 2월 14일 북경을 출발하여 3월 10일 심양에 도착하고, 3월 16일 봉황성에 도착하였다. 3월 17일 책문을 나와 3월 18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도착하였다. 당시 사행은 압록강을 건넌 후 31일을 노정에서 보내고 북경에 도착하여 45일을 체류하였다. 또한 북경에서 회정 후 34일이 걸려 의주에 도착하여 총 110일이 소요되었다.
특성 및 가치
 숙종 연간 서장관으로 각각 사행한 한태동한지 부자가 쓴 연행록의 합본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자료이다.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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