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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록(연행녹)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96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홍순학(洪淳學) 저(著)
작성시기    :
1866 / 고종 3년
형태사항    :
크기: 33.3×21.4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9.1×13.6㎝ /
청구기호    :
K2-4527
M/F번호    :
MF35-994, MF16-314
기록시기    :
1866年(高宗 3)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66년(고종 3) 4월 9일부터 8월 23일까지 진하사은겸주청사로 정사 柳厚祚, 부사 徐堂輔와 함께 서장관으로 중국을 사행한 洪淳學이 쓴 기행가사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燕行錄’, 권수제는 ‘연행녹’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표지의 좌측 상단에 표제가 기재되어 있다. 본문에 앞서 5행에 걸쳐 ‘燕行歌 / 大王殿下丙寅年月嘉禮時使臣 / 上使 柳判書臣厚祚 / 副使 徐參判臣輔 / 書狀官 洪淳學’이라는 기록이 있다. 본문의 필사에 左右雙邊, 烏絲欄, 9行, 無魚尾, 黑口, 판심제 아래에 ‘楓石庵書室’이 인쇄된 印札空冊紙를 사용하였다. 본문 가운데 잘못 기재한 부분을 잘라내고 뒤에 종이를 덧붙여 수정한 흔적이 있다. 또는 잘못 기재한 부분에 표시한 후 우측에 수정할 글자를 기재하기도 했다. 관련한 서적으로 장서각 소장 동명의 서적(K2-4528)이 있다. 두 책을 비교하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행이 서로 어긋나거나 한글 표기가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 본 책이 K2-4528에 비해 정서되었다.
체제 및 내용
 표제는 ‘연행녹’이지만, 문장의 형식에 맞게 ‘연행가’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본문의 권두에는 “燕行歌, 大王殿下 丙寅年 月 嘉禮時使臣, 上使 柳判書 臣 厚祚, 副使 徐參判 臣 輔, 書狀官 洪淳學”이라 적혀 있어 당시 사행의 배경과 삼사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부사 徐堂輔의 이름이 ‘徐輔’로 되어 있어 오류가 있다. 당시 사행은 1866년 3월 고종명성왕후의 嘉禮 후 왕비 책봉을 주청하기 위한 것으로, 4월 9일 성정각에서 고종에게 사폐한 후 5월 11일 책문을 출발하여 5월 16일 심방에 방물을 교부하였다. 5월 27일 산해관, 6월 6일 북경에 도착하여 남소관에서 체류하였다. 7월 8일 예부에서 상마연, 7월 11일 회자문을 받은 후 북경을 출발하여 회정하였고, 8월 23일 고종에게 복명하였다.
 홍순학은 권두에 남자로 태어나 중원에 가보기를 기원하였는데, 국왕의 가례로 에 주청하러 가는 삼사 중 서장으로 중한 직책 맡아 당시 25세 ‘小年功名’이 장하다며 연행에 대한 기대감을 기술하였다. 책문에 들어가 인마를 점검하고 목도한 변문의 청인 복식 및 주거지 등 풍속 묘사는 매우 상세하고 사실적이다. 청석령(쳥성녕)을 지날 때는 병자년 효종이 이 고개를 넘으며 지은 시조를 상기하기도 하였다. 요동벌판의 광활함을 노래하고, 관제묘 지나며 삼국지의 영웅을 언급하였다. 북경조양문으로 들어가 동악묘의 도교 신들과 북경 성문을 비롯한 자금성 주요 전각을 차례로 노래하고 오룡정, 옹화궁, 대성전, 국자감의 벽옹을 유람하고, 북경 성시의 번화한 풍속을 자세히 상술하였다. 서산을 유람하면서 불타버린 터만 남은 현실을 한탄하면서 ‘신유년 서양국놈’이 일으킨 참상을 언급하였다. 이는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중 영불연합군에 의해 북경이 점령되면서 베이징조약 체결 후 이화원원명원 등이 입었던 화재를 말한 것으로, 당시 조선에서 서양인들의 위협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 인식을 잘 보여준다. 홍순학신유년, 즉 1861년이라 언급한 것은 조선 동지사행에 의해 조선에 알려진 해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황제가 태묘 친제의 거동 때 삼사가 나가 지영하면서 황옥교를 맞고 황제가 국왕의 안부를 묻는 내용도 언급하였다. 오문에서 황제가 조선 사절의 정관에게 상사하고, 예부상서가 주관하여 상마연을 베푼 것도 기술하였다. 40일 동안 북경 관소에서 머문 홍순학은 8월 5일 책문에 이르러 모친의 생신을 챙기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8월 6일 압록강을 건너 8월 23일 고종에게 복명 후 귀가하기까지 소회를 적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고종은 사신이 복명할 때 청국의 반란 수습 상황, 북경의 서양인 습속과 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 태도 등을 관심 있게 질문하였다. 이는 조선에서도 이양선이 출몰하여 1866년 병인양요의 약탈이 있었기 때문에 과 서양국의 동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연행의 출발부터 도착까지 연월일과 날씨, 노정을 적은 대개의 연행록과 달리, 기행가사 형식에 서장관으로 연행을 다녀온 자신의 소회를 담은 작품이다. 19세기 후반 청국의 시대상을 사실적 관찰에 의해 묘사한 점이 주목된다. 장서각에 동일한 내용의 필사본 『연녹』(K2-4528) 1책이 더 전하는데, 책형이 더 넓어 전체 39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내용 중에 고치거나 작은 글씨로 추기한 부분이 보인다. 본서(K2-4527)는 이러한 부분이 모두 정서되어 K2-4528을 模本으로 후에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이병철, 「연행가사의 제언과 「연행가」를 통해 본 전환기 조선」, 『韓國思想과 文化』 52, 2010.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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