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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일기(瀋陽日記)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93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찬자미상(撰者未詳)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8.6×18.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524
M/F번호    :
MF35-32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심양 조선관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1644년 1월 20일 잠시 조선의 도성에 들어왔다가 2월 19일 심양으로 돌아간 후 그해 8월 18일 청나라 황제묘에 배례한 후 19일에 있을 거국적 西行을 告辭한 일까지 기록한 일기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책수 표시 부분의 ‘共十’이라는 기록을 통해 본래 10책임을 알 수 있다. 표제는 ‘漢瀋錄’, 권수제는 ‘瀋陽日記’이다. 표지의 좌측 상단에 표제와 ‘九’라는 冊次가, 우측 상단에 ‘瀋陽五’라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필사에 無郭, 無絲欄, 無版心의 楮紙를 사용하였다. 잘못 기재한 부분을 수정할 때 기존의 기록 위에 종이를 덧대고 그 위에 수정할 내용을 기재하였다. 본문 첫 장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瀋陽日記』는 병자호란 후 1637년(인조 15) 남한산성의 出城에서 시작, 昭顯世子鳳林大君(뒤에 孝宗)이 인질로 瀋陽에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8년간의 기록이다. 규장각 소장 『심양일기』는 8책분(奎12825-1)과 10책분(奎12825-2) 필사본 두 질이 전한다. 本院, 즉 세자시강원에서 일기체의 날짜순으로 기술하여 기후, 일상 동정, 문안, 기타의 사실 등을 기재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1637년 1월 인조남한산성을 나와 三田渡에서 항복하고 이어 세자 일행이 심양으로 출발하여 4월 도착하기까지, 1638년 鳳林大君이 淸帝의 西行에 동행한 전말, 1639년 淸帝의 서역 정벌에 조선이 調兵의 약속 시기를 어긴 일로 책망한 내용, 1640년 林慶業의 군대가 도착한 일, 1641년 왕세자가 領兵將 柳琳의 군대와 함께 錦州城 공격에 참가한 내력, 1642년 조선의 農軍을 에 보낸 것과 崔鳴吉의 拘囚, 林慶業의 탈출, 申翊聖 등 五臣의 압송, 1643년 五臣과 崔鳴吉·金尙憲의 석방, 淸 太宗의 죽음에 告哀使 入京, 1644년 왕세자가 일시 入京했다가 심양으로 돌아간 일, 같은 해 9월 왕세자가 睿親王(도르곤)을 따라 西征에 참여한 일, 끝으로 世祖北京에 천도하기 전날 왕세자를 거느리고 太宗陵을 참배한 사실까지 기록하였다. 10책분의 제10책에는 1644년 1월 20일부터 2월 18일까지 『심양일기』를 등사하여 증보한 내용을 실었다.
 한편 장서각 소장 『심양일기』는 1책만 전하는데, 규장각 소장본 8책분 중 제8책에 해당하는 1644년 소현세자가 일시 조선에 입경했다가 심양으로 돌아간 후 6월 18일 영안교에 도착하여 황제의 능에 배례한 내용과 일치한다. 일기의 내용 중에는 『瀋陽狀啓』와 세자시강원의 草記를 참조한 내용이 보여 주목된다. 주요 내용은 소현세자1644년 1월 20일 파주에서 서울로 들어와서 21일 종묘에 전알하였고, 22일 세자를 호행한 淸將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위로하였으나 국왕은 병으로 친림하지 못하고 세자가 이들을 맞아 접대하였다. 30일 왕세자가 남별궁에 가서 서연청에서 호행청장들과 망궐례 후 茶禮를 행하였다. 2월 8일 왕세자가 숙녕전에 친제하였다. 18일 종묘숙녕전에 가서 배사례를 행하고, 19일 대명전에서 배사한 후 심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궁하였다. 서교를 거쳐 벽제관에 이르었고, 20일 고양 벽제관을 출발하여 파주에 이르고, 21일 파주에서 장단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날 빈궁이 병세가 있어 세자만 張陵에 展謁하였다. 22일 장단에서 개성에 이르렀고, 24일까지 개성을 출발하여 금교에서 쉬었다가 평산에서 유숙하였다. 25일 평산을 출발하여 서흥에서 유숙하였고, 26일 봉산에서, 27일 황주에서 유숙하고, 세자가 관소에 가서 호행장을 접견하고 觀射 후 다례를 행하였다. 28일 중화에서, 29일 평양에서 유숙하였다. 3월 1일 세자가 기자 정전 터를 구경하였고, 3일 평양을 출발하여 순안에서 유숙하였다. 4일 숙천, 5일 안주, 6일 안주에서 세자 빈의 탄일을 맞았고, 세자가 호행청장들과 백상루에 올라 술과 음식을 접대하였다. 7일 청천강을 건너 가산에서 유숙하였고, 8일 중화를 거쳐 정주에서 유숙하였고 이날 강빈의 병세에 점차 차도가 있었다. 10일 정주를 떠나 선천에서 유숙하고 11일 거련관을 거쳐 良第에서 유숙하였다. 12일 의주에서 유숙하고 16일 압록강을 건너 구련성에 이르고, 17일 細浦 근처에서 유숙하였다. 18일 책문 봉황성 내의 청인의 집에서 유숙하였다. 19일 송참, 20일 통원보, 21일 초하구를 거쳐 연산보, 22일 청석령, 낭자산, 삼류하를 거쳐 23일 태자하, 24일 십리보를 지나 사하보를 출발하여 입성하자 混河에서 봉림대군인평대군이 출영하였고, 심양관에 돌아오자 시강원의 빈객 이하가 세자에게 숙배하였다. 27일 세자와 양 대군이 편복을 입고 문덕문으로 들어와 순치제 앞에서 삼배 후 다례를 행하였다.
 4월 1일 세자가 심양관에서 망전례를 행하고, 2일 세자가 심양관에서 사은부사에게 상마연을 베풀었다. 4월 9일 청조가 九王의 西征에 세자를 동행하게 하였다. 10일 봉림대군 행차와 칙사를 파견할 것이라는 장계를 보냈다. 11일 봉림대군이 관소를 출발하였다. 세자는 10~12일 요하에서, 15일 몽고촌에서 유숙하고 산해관로를 향하였다. 28일 大衙門에서 제왕이 모였는데, 봉림대군도 참여하였다. 2월 황성이 (이자성에게) 함락되고, 병사들이 산해관을 공격하니 영원장병 오삼계와 청장이 4월 22일 산해관문을 열기로 서로 약조하였고 적에 맞선 大戰에서 승리하였다고 보고하였다. 5월 12일 대군이 북경으로 진격하니 유적(이자성)이 도주하여 병사들이 추격하였다고 하였다. 5월 15일 서행에서 승리를 거두어 북경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을 하늘에 고하고, 제왕 이하 제장이 대아문에 모여 다례를 행하고 파하였다. 6월 18일 세자 행차가 심양관으로 돌아오는 것을 재신 이하가 出迎하였고, 8월 18일 세자가 제왕을 수행하여 황제릉 앞에서 배례하고 다음날 있을 擧國 西行을 告辭하였다.
 다음의 「西行日記」는 심양관에서의 일기와 별도로 1664년 4월 9일부터 6월 18일까지 소현세자가 구왕의 서정에 동행하여 승리한 후 심양에 돌아올 때까지의 일기를 세자를 배종한 입장에서 자세히 기술하였다. 4월 22일 산해관 입관과 5월 2일 조양문을 통해 구왕이 입성한 내용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소현세자북경 거처는 5월 6일 자금성문연각 동쪽 公廨에 마련되었고, 5월 24일 북경을 떠나 심양으로 향하여 6월 18일 관소로 돌아왔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소현세자봉림대군이 從臣과 함께 1637~1643년 심양에서 볼모로 있을 때 從行한 侍講院 宰臣 講官 등을 통해 承政院에 보낸 8년간 狀啓의 謄錄인 『瀋陽狀啓』와 함께 對淸 外交의 전말을 살필 수 있다. 특히 권미의 「서행일기」는 소현세자가 구왕 도르곤과 동행하여 산해관에서 오삼계와 화약을 맺고 북경에서 이자성의 난을 진압하고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언급하여 명청 교체기 연구에 매우 의미 있는 사료이다.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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