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간양록(看羊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92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강항(姜沆) 찬(撰)
작성시기    :
[1656] / 효종 7년
형태사항    :
크기: 30.5×20.5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523
M/F번호    :
MF35-44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睡隱 姜沆(1567~1618)이 1597년 9월 왜군에게 끌려가 1600년 5월까지 현지에서 경험한 포로 생활과 일본의 정세를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와 서근제는 ‘看羊錄’, 권수제는 ‘睡隱看羊錄’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표지의 좌측 상단에 표제가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필사에 無郭, 無絲欄, 無版心의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 가운데 잘못 기재한 부분을 문질러 지우고 수정하거나, 잘라내고 뒤에 종이를 덧붙여 수정한 흔적이 있다. 본문 상단에 한자의 일본 음을 한글로 기재한 부분이 나타난다. 빠진 글이 있는 부분에는 표시한 뒤 본문 우측에 빠진 내용을 기재하였다. 간혹 본문 상단에 첨지를 붙여 필사자의 의견을 기재하기도 했다. 권말에 〈倭國地圖〉 1매가 수록되어 있다. 본문 첫 장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597년 강항은 고향인 전라도 靈光郡에 돌아와 覲親하였다. 이해 5월에 명나라 總兵 楊鎬가 군병 3천 명을 거느리고 전라도 남원에 주둔하게 되자, 참판 李光庭分戶曹로서 군향을 독려하기 위하여 조정에 주청해서 강항종사관으로 삼았다. 그러나 왜적에 의해 남원이 함락되자 고향 영광에 돌아와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였고, 영광 경계까지 적병이 침범해오자 통영으로 이동하던 중 적선을 만나 포로가 되었다.
 강항일본에 도착한 후 오쓰성[大津城]에 갇혀 있다가 오사카를 거쳐 교토 후시미성[伏見城]으로 이송되었다. 그가 후시미성에 억류되어 있을 때 유학자로서의 명성이 알려지자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황의 성리학을 일본에 전하게 되었다. 후시미성의 승려이자 학자인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와 교유했으며, 학식이 높은 승려 요시히토[好仁]와 친교하며 사서오경을 일본어로 번역·간행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강항은 유학을 매개로 교유한 인물들을 통해 들은 현지의 지리, 군사시설, 관제를 비롯한 정세를 비밀리에 인편으로 조선에 보고했다. 강항은 2년 8개월에 걸친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1600년 4월 교토를 떠나 그해 5월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 당도하였다.
 본서는 일본 현지의 정세를 적어 고국에 있는 임금에게 올린 賊中封疎, 일본의 관직과 將帥들의 특징 등을 기록한 賊中見聞錄, 귀국 후 조정에 올린 詣承政院啓辭, 일본에서의 포로 생활을 기록한 涉亂事迹, 귀환할 때 현지에 남은 포로들에게 준 檄文인 告俘人檄으로 구성되었다. 본서의 맨 마지막에는 〈倭國地圖〉가 포함되었다.
 권미에 있는 강항의 제자 윤순거(1596~1668)가 1654년 지은 발문에는 본서의 간행 내력이 소개되었다. 발문에 의하면, 강항은 포로 시절에 보고 들은 바를 일기 형식으로 기술하여 ‘巾車錄’이라 이름 붙였다. 여기서 ‘건거’란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의미로 포로 신세에서 작성된 것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항 사후 1656년(효종 7)윤순거에 의해 책으로 발간할 때 ‘看羊錄’으로 고친 것이다. ‘간양’이란 흉노 땅에 포로로 잡혀갔던 한나라 蘇武의 충절에 강항의 충의를 비견한 것이었다.
특성 및 가치
 1597년 정유재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간 강항오쓰성, 오사카, 교토에서 포로 생활 중 현지인들과 교유하여 얻은 일본의 풍속, 지리, 군사 정세 등 최신 정보와 견문을 반영한 저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집필자
정은주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