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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사담초(北楂談艸)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90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건조(鄭健朝) 찬(撰)
작성시기    :
[1874] / 고종 11년
형태사항    :
크기: 25.5×15.8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521
M/F번호    :
MF35-714, 99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73년(고종 10) 10월 24일부터 1874년(고종 11) 3월 30일까지 동지사의 정사로 청나라를 사행한 鄭健朝(1823~1882)가 북경에서 필담한 것을 기록한 연행록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와 권수제는 ‘北揸談草’이다. 흰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표지 좌측 상단에 표제와 小字로 된 ‘九容齋藏’이라는 글이 제첨에 기재되어 붙어 있다. 본문의 필사에 無郭, 無絲欄, 無版心의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에 빨간 점을 찍어 띄어 읽을 부분을 표시했다. 또한 본문 우측에 빨간 원을 표시한 경우가 있으며, 본문 상단에 그에 대한 설명을 기재하기도 했다. 본문 첫 장에 ‘同治十二年癸酉(1873)冬至賀節正使’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옆에 볼펜으로 ‘西紀一八七三年高宗十年’이라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 가운데 잘못 기재한 부분을 문질러 지우고 수정하거나, 잘라내고 뒤에 종이를 덧붙여 수정한 흔적이 있다. 본문 첫 장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873년 동지사는 정사 鄭健朝, 부사 洪遠植, 서장관 李鎬翼을 파견하였다. 본서는 정사 정건조북경에서 만나 필담을 나눈 중국인들의 이름과 그에 대한 인적 정보, 그리고 함께 나눈 필담을 대화체로 작성하였다. 필담 내용에 대해 구체적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小註를 달아 부연 설명을 하였다.
 1874년 2월 예부상서 萬靑黎(1797년생, 68세)와 나눈 필담 중에 정건조청나라의 군정[戎政]과 洋夷의 침략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고, 만청려조선의 洋夷 정책 중 대원군 이하응의 斥邪 사상과 海外 諸國船의 국경 표류 등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서 당시 조선의 대외적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형부주사 張世準(1826년생, 49세)과의 필담에서는 중국영국의 십여년간의 교전과 1870년 서양 선교사와 현지인들이 충돌한 천진사건에 대한 언급, 영국프랑스·러시아·미국·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의 형세에 따른 중국의 開港과 洋倭에 대한 근심을 읽을 수 있다. 정건조는 권미에 「古客談艸」를 붙여 전날 나눈 필담과 함께 세계 각국의 형세를 글로 남기는 이유를 밝혔다.
 정건조 일행은 1873년 11월 29일 책문에 들어가 12월 3일 책문을 통과하였고, 12월 8일 심양에서 세폐와 방물을 교부한 후 12월 18일 산해관에 도착하여 12월 26일 북경 남소관에 이르렀다. 12월 27일 예부에 표문과 자문을 정납하고 12월 29일 황제가 태묘에서 제사를 올리러 궁에서 나올 때 오문 밖에서 황제의 황옥소교를 영송하였다. 12월 30일 황제가 보화전에서 제석연을 베풀고 조선 사신에게 酪酒 등을 내리고 비단을 하사하였다.
 1874년 1월 1일 황제가 당자에 제사하고 慈寧宮 행례를 행하고, 태화전에서 하례를 받았다. 당일 축시에 조선 삼사는 오문 밖에서 당자에 향하는 황제를 영송하고, 황제가 환궁하여 묘시에 자녕궁 행례를 행하자 오문 앞에서 반열에 서서 행례하였으며, 우익문 밖에서 태화전에 들어와 西班의 끝에서 三跪九叩頭禮를 행하였다. 1월 6일 황제가 기곡단재에 나갈 때 오문 밖에서 황제의 황옥소교를 환송하였고, 1월 10일 황제가 자광각에서 연회를 베풀었고, 1월 15일 황제가 보화전에서 베푼 연회에 참석하였다. 1월 19일 황제가 정전에서 연회를 베풀었고, 2월 4일 세폐를 정납하였다. 2월 10일 예부에서 하마연을 베풀고 精饍司에서 상마연 음식을 보냈고, 2월 11일 자문 7度를 받고, 2월 12일 일행이 북경에서 출발하여, 3월 30일 중희당에서 복명하였다. 총 154일 동안의 노정 중 북경 남소관에서 46일을 체류하였다.
 서장관 이호익과 수역 오경석이 올린 「使臣別單」에 의하면, 서산 원명원이 영불연합군에 의해 훼손되어 올해 봄에 수리할 것을 상유하였고, 감숙성귀주성에서 비적들의 漢族 살해에 대해 보고하였다. 일본국 흠차대신이 1874년 3~4월 사이 서양국과 같이 북경에 公館을 개설하였음을 보고하였다.
특성 및 가치
 1874년 북경에서 동지사행의 정사 정건조가 당시 청나라예부상서 萬靑黎형부주사 張世準과의 필담을 대화체로 남김으로써 당시 조선 양국이 외세에 의해 개항 위협에 맞닥뜨린 시대적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제130책, 고종 10년 7월 19일(을축)
『日省錄』 1874년 3월 30일(임신)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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