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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85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창업(金昌業) 저(著)
작성시기    :
1713 / 숙종 39년
형태사항    :
크기: 23.1×15.3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6책(冊) / 판식: 반곽(半郭) 18.1×11.2㎝ / 인장정보: 趙鳳夏章,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516
M/F번호    :
MF35-1555
기록시기    :
1713年(肅宗 39)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12년(숙종 38) 동지겸사은사행의 정사 김창집을 따라 북경에 다녀온 金昌業이 쓴 연행록이다.
서지사항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와 권수제는 ‘老稼齋燕行日記’, 서근제는 ‘稼齋燕行錄’이다. 갈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글자 같은 문양이 있다. 표지의 좌측 상단에 표제와 冊次가 제첨에 기재되어 붙어 있으며, 총 책수 표시 부분에 ‘共六’이라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필사에 四周雙邊, 烏絲欄, 10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의 印札空冊紙를 사용하였다. 본문 중에 끊어 읽기 용이하게 검은 점이 찍혀 있다. 본문에 충식이 있는 부분은 종이로 배접하고 補寫하였다. 본문 가운데 잘못 기재한 부분을 잘라내고 뒤에 종이를 덧붙여 수정한 흔적이 있다. 책마다 첫 장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우측 하단에 2.2cm 정방형의 ‘趙鳳夏章’이 날인되어 있다. 다만 제6책은 ‘趙鳳夏章’이 있던 부분이 결락되어 배접 후 보사하였기 때문에 날인되어 있지 않다.
체제 및 내용
 제1책은 1712년 11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같은 해 12월 15일 遼東寧遠衛에 이르기까지의 일기이다. 권수에 一行人馬渡江數로부터 山川風俗總錄, 往來總錄 등 11종에 아르는 일행의 명단, 歲幣物目, 조공의식 절차, 풍속, 이정 등에 관한 개요가 별도로 수록되어 있다. 그 세목은 사행의 명단과 사행의 의식 절차 및 예단에 대한 내용으로 一行人馬渡江數, 方物歲幣式, 鳳城瀋陽北京山海關所用禮單人情數, 入京下程, 表咨文呈納, 鴻臚寺演儀, 朝參儀, 賷回物目, 上馬宴을 기록하였다. 「일행인마도강록」에 의하면, 김창업1712년 6월 23일 맏형 김창집이 사행의 정사로 차출되자 자제군관 중 打角의 신분으로 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정사는 김창집, 부사는 참판 尹趾仁, 서장관은 掌令 盧世夏로 총 인원은 541명이고, 馬匹은 435두였다. 「방물세폐식」은 年貢, 冬至, 正朝, 聖節 등의 예물 물목이 적혀 있다. 원래 使行의 종류는 歲幣使, 正朝使, 冬至使, 聖節使 등 명목이 구분되어 있었으나 1645년(인조 23)부터 양국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三節兼年貢使라 하여 正朝에 가는 것이 관례가 되었는데, 이 행차도 그 관례에 따른 것이다. 예물 물목을 보면 항목이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봉성·심양·북경·산해관 소용 예단 인정수」는 경로 및 북경에서 중국 관원들에게 줄 선물 물목이다. 「입경하정」은 북경에 머무는 동안 중국 측에서 정사, 부사와 서장관 이하 각 수행원 및 마필에 이르기까지 매일 제공하는 식량 품목, 路費 등의 항목 명세서이다. 「표자문정납」은 북경에 도착한 다음날 예부에 가서 表文, 咨文을 바치는 의식이다. 「홍려시연의」는 외국 사절 관계의 일을 전담하는 기관인 鴻臚寺에 가서 朝參 의례를 연습하는 절차이다. 「조참의」는 正朝에 청나라 백관 및 각국 사신들과 함께 賀禮를 올리는 의식이 적혀 있다. 본문에는 주를 달아 許篈이 쓴 『荷谷朝天錄』을 인용하면서 명나라 때부터의 통례를 적고 있어 이를 참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재회물목」은 에서 조선 국왕 이하 정사, 부사 및 각급 수행원에게 내린 물목 명세서로, 비단, 마필, 銀子 등이 주요 품목이다. 「상마연」은 북경을 떠나기 전날에 예부로부터 송별 연회를 받는 절차이다.
 별록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것이 「山川風俗總錄」이다. 이는 연행록 체제에 처음 등장하는 내용으로 당시 김창업이 연행에서 접한 외국의 진기한 풍속, 漢人과 淸人의 차이, 청인의 지배 하에서 한인 의복 제도의 변화, 조선 풍속과의 차이 등을 흥미롭게 표현하였다. 이를 기술하는 데는 중국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창업이 밝혔듯이 김창집이 연로에 있는 명산, 대천, 고적이 기록된 책 한 권과 월사 李廷龜『角山閭山千山遊記錄』 1책과 輿地圖 1장을 행장 속에 넣어준 것이 많은 참조가 되었을 것이다.
 「往來總錄」은 사행의 왕복 日數, 거리 등을 통계한 기록이다. 김창업 일행이 1712년(숙종 38) 11월 3일 서울을 떠나 26일 압록강을 건너서 같은 해 12월 27일 북경에 도착하여 46일간 머물다가, 다음해인 1713년 2월 15일에 회정하여 3월 13일 압록강을 넘어 같은 달 30일 서울로 되돌아오기까지의 왕복 146일간의 기행 견문을 일기로 적은 것이다. 서울에서 북경까지 왕래한 거리가 3,019리이고, 사행과 별도로 혼자 유람한 거리는 653리였다. 김창업이 「왕래총록」에서 사행에서 접한 견문을 바탕으로 으뜸 壯觀과 奇觀을 구분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구매한 서책과 물품, 자신의 盤纏[노자] 등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제2책은 1712년 12월 16일 영원위에서부터 같은 달 29일 북경에 도착하여 섣달 그믐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 제3책은 1713년 1월 1일에 신년 朝賀를 드리고 같은 해 1월 30일까지 북경을 유람한 일기이다. 제4책은 1713년 2월 1일부터 2월 14일 북경을 떠나기까지의 일기이다. 제5책은 1713년 2월 15일부터 같은 달 29일까지 북경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일행과 별도로 醫巫閭山 유람길에 오르기까지의 일기이다. 제6책은 1713년 2월 16일 의무려산부터 千山까지 유람하고 다시 일행과 합류하여 義州를 거쳐 한양에 돌아오기까지의 일기이다. 권미에 연행록을 끝내면서 “得詩四百二篇”이라 하여 연행 중에 얻은 시가 402수라고 적었는데, 본서에 수록되지 않았다. 다만 별도로 편집·간행된 『노가재집』에 시가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김창업 일가는 노론 낙론계로, 18세기 조선에서 기행과 그에 따른 문학의 발전을 견인하였던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서의 체제는 이후 홍대용『을병연행록』, 박지원『열하일기』 등 18세기 연행록의 기술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병자호란 이후 에 대한 반감을 탈피하여 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도모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연행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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