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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선생표해록(錦南先生漂海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84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최부(崔溥) 찬(撰)
작성시기    :
1725 / 영조 1년
형태사항    :
크기: 25.3×18.4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3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17.0×14.2㎝ /
청구기호    :
K2-4515
M/F번호    :
MF35-1892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488년(성종 19)崔溥(1454~1504)가 제주에서 표류하여 절강성 영파현에 표박했다가 산동성을 거쳐 북경에서 명 효종(재위 1488~1505)을 만나고 6월 14일 회정하여 성종에게 올린 표류 일기를 1725년(영조 1)에 간행한 것이다.
서지사항
 총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錦南漂海錄’, 권수제는 ‘錦南先生漂海錄’, 판심제는 ‘漂海錄’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표지의 좌측 상단에 표제와 冊次가, 총 책수 표시 부분에 ‘共二’가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 有界이고 行字數는 10行 17字의 木板本이다. 魚尾가 二葉, 三葉, 반달 모양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遞修本으로 추정된다. 내용 중 일부가 결락되어 종이로 배접하고 補寫하였다. 책마다 권수제면 우측 하단과 권말 좌측 하단에 판독 미상의 서로 다른 인장이 각 1顆씩 날인되어 있다. 제2책 권말의 ‘崇禎後再乙巳(1725)冬外六世孫錦城羅斗冬謹書’의 기록을 통해 1725년(영조 1)에 간행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총 3권으로 구분되었다. 제1권의 권두에 「표해록서」가 있는데, 최부가 표류한 정황을 기록하고 1487년 9월 17일부터 1488년 2월 4일까지 일기를 기록하였다. 최부1487년 9월 제주 삼읍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파견되었다. 1488년 1월 30일 부친의 부음을 듣고 윤1월 3일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하던 중 기상 악화로 인해 윤1월 15일까지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윤1월 16일에야 중국 절강성 영파부에 정박할 수 있었다. 최부 일행은 총 43명이었다. 19일 도저소에 도착하여 표류에 대한 공초를 받았다. 중국 官憲이 최부 일행을 해안 지대를 약탈하는 왜선으로 오해하고 나포하여 처형하려고 했는데, 최부에게 조선의 역대 연혁과 산천, 인물, 풍속, 祀典과 여러 제도를 상세히 써서 가져올 것을 요구하여 조선 관리임을 확인하였다. 윤1월 23일에야 중국 관헌의 호송을 받아 도저소를 출발하였다. 24일 健跳所, 25일 월계 순검사, 26일 영해현을 지나 28일 연산역, 29일 영파부를 지났다. 2월 1일 자계현, 2일 여요현, 3일 상우현, 4일 紹興府에 도착하였다. 최부는 표착한 절강 지역에 불교 사찰이 번성한 것에 비판적이었으며, 처사 왕을원에게 조선에서는 유교만을 숭상한다고 강조하였다.
 제2권에는 1488년 2월 5일부터 3월 25일까지 일기를 기록하였다. 최부 일행은 2월 6일 항주에 도착하여, 13일 항주를 떠나 16일 소주부에 이르렀다. 이후 2월 20일 진강부에 도착하였고, 21일 양자강에 이르렀다. 2월 23일 양주부, 24일 우성역, 26일 회음역, 29일 고성역에 이르렀다. 3월 4일 체운소에 이르고, 3월 6일 패현, 3월 10일 개하역, 3월 11일 안산역, 3월 14일 임청현, 3월 18일 덕주, 3월 23일 정해현, 3월 24일 천진위에 도착하였다. 최부산동성 노교역을 지날 때 요란한 태감의 행차를 비판하고, 환관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곳곳에 내비치고 있다.
 제3권에는 3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일기를 기록하였다. 최부 일행은 3월 28일 북경 옥하관에 도착하였고, 29일 병부에 나아갔다. 이때 조선의 하책봉사 안처량 등 24명이 40여 일을 머물다 3월 22일 회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옥하관에 머무는 동안 최부 일행에게 사신들과 달리 1인 당 묵은쌀 한 되씩을 지급하였다. 4월 3일 표류인에 대한 奏本을 예부에 보냈다. 4월 6일에는 유구국 陳善, 蔡賽 등이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러나 최부는 이들을 만나서도 유구국이나 일본에 대한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4월 7일 병부예부로 보낸 자문을 가져왔다. 4월 12일에는 조선에 6회를 왕래한 인물 李海옥하관에 찾아와서 서거정의 안부를 물었다. 4월 18일 예부에 나가니 19일 황제를 알현할 것을 명하였다. 4월 20일 대궐에서 명 효종에게 사례하였고, 4월 24일 회동관을 출발하였다. 북경에서 최부는 여염에서 불교와 도교를 숭상하고, 상업에 주로 종사하며, 복식에 남녀 구분이 거의 없고, 음식문화에 존비의 구분이 없는 것 등에 대해 저속하다고 비판하였다. 4월 27일 어양역에 이르러 조선사은사 成健 일행을 만났다. 4월 29일에는 옥전현에서 조선에 파견되었다가 귀환하는 명나라 상사 董越과 부사 王敞을 만났다. 4월 30일 풍윤현을 지났다. 5월 1일 난주, 5월 2일 영평부, 5월 4일 무령위, 5월 5일 유관역, 5월 7일 산해관, 5월 11일 영원위를 지나 5월 16일 광녕역에서 조선성절사 蔡壽 일행을 만났다. 5월 21일 사령역에 이르고, 6월 1일 백가장에서 묵었다. 6월 2일 분수령을 지나 통원보에 이르렀다. 6월 3일 봉황산에 이르고, 6월 4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성에 도착하였다.
 제3권 권미의 「견문잡록」에 최부 일행의 노정을 수록하였다. 당시 그들이 북경에 이르는 동안 수로와 육로를 이용하였는데, 수로는 운하가 통과하는 노정과 일치한다. 또한 자신이 경험한 명나라 사람들의 인심과 풍속을 자세히 기술하여 기행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 성종 때 불시의 표류로 인해 중국의 內地를 관찰할 수 있었던 최부강남의 풍속과 당시 사회를 비판적으로 상술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중국 문화의 중심지인 강남산동성을 지나 북경으로 이동하는 동안 조선 사림 중 한 명인 최부의 눈에 비친 이 지역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조영록, 「漂海錄-중국과 일본에 떨친 조선 선비정신의 보고」,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휴머니스트, 2006.
최부, 박원호 역, 『표해록역주』,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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