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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전록(恭陵典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27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왕직(李王職) 초록(抄錄)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5.4×19.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0×15.0㎝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4416
M/F번호    :
MF35-980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睿宗(1450~1469)의 元妃인 章順王后 韓氏(1445~1461)의 陵인 恭陵에 대한 내용을 일제시대 李王職에서 필사한 책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와 권수제는 ‘恭陵典錄’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표지는 재장되었는데, 뒤표지 이면에 ‘西紀一九七三年五月 / 藏書閣再裝’이라는 글이 2행에 걸쳐 기재되어 있다. 맨 앞장과 뒷장을 비워 공격지처럼 사용하였다. 본문의 필사에는 四周雙邊 朱絲欄, 10行, 上下向朱魚尾, 판심제 아래에 ‘李王職’이 인쇄된 李王職用罫紙를 사용하였다. 본문 중 잘못된 기재한 부분에 종이를 덧대어 내용을 수정하였다. 본문 첫장 우측 상단에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공릉은 현재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에 위치해 있다. 사적 제2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순왕후 한씨의 本貫은 淸州로, 아버지는 上黨府院君 領議政 韓明澮, 어머니는 黃驪府夫人 閔氏이다. 1460년(세조 6) 世子嬪으로 책봉되어, 1461년(세조 7) 元孫인 仁城大君을 낳은 뒤 錄事安耆의 집에서 병으로 요절하였다. 1472년(성종 3) 왕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徽仁昭德章順王后이다.
 능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恭陵令 趙漢弼이 쓴 「恭陵典錄」으로 시작된다. 이에 따르면, 본래 典錄 1冊이 있었으나 문헌이 소략하여 고증에 이바지하지 못하므로, 관련 문헌을 수집하여 편성한다고 하였다. 그 뒤로는 「王妃譜錄」, 「恭陵誌文」, 「昌陵誌文」, 역대 왕들의 親祭, 丁字閣 重建 事項, 摘奸, 奉審書啓 등이 기재되어 있으며, 「祭享之規」, 「祭官分排之規」 등을 비롯한 規式들과 「內摘奸時勿爲執頉事目」 등의 事目, 延燔과 賭地에 대한 「完議」, 「恭陵典錄跋」, 守僕廳과 諸軍廳에 대한 「完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공릉전록발」은 乙丑年辛錫奎가 작성하였는데, 『承政院日記』신석규1745년(영조 21)恭陵參奉에 임명된 내용이 있으므로, 작성 시기는 영조 연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필사에 사용된 용지가 이왕직에서 사용하던 것이므로, 이는 영조 대의 원본을 일제강점기에 필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필사한 이왕직은 일제강점기 李王家를 관리하던 관청으로, 1911년 2월 1일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의 宮內府를 계승하여 왕족들을 비롯한 궁궐, 왕릉, 종묘 등을 두루 관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일제강점기에 이왕직에서 이왕가의 陵, 園, 墓를 관리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정황적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와 관련하여 장서각 소장 『恭陵謄錄』(K2-2286), 『恭陵事例』(K2-2287), 『恭陵圖面』(K2-4415)을 함께 참조할 수 있다.
참고문헌
『恭陵謄錄』
『恭陵事例』
『恭陵圖面』
國學振興硏究事業推進委員會, 『藏書閣圖書解題Ⅰ』,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5.
집필자
권석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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