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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공묵합기(御製恭默閤記)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095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조(正祖) 어제찬(御製撰), 서유린(徐有隣) 봉교서(奉敎書)
작성시기    :
1783 / 정조 7년
형태사항    :
크기: 47.8×33.0cm / 판본: 탁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4377
M/F번호    :
MF35-486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83년(정조 7) 7월 19일에 正祖恭默閤을 수리하게 한 것에 대한 탁본첩이다.
서지사항
 본문 첫 장의 탁본 서명이 ‘御製恭默閤記’이고, 표제는 ‘正祖御製恭默閤記 搨’이다. 표지 장황은 청록색 비단에 모란당초문이 있는 것이고, 장정은 서배를 감싼 호접장이다. 앞뒤의 표지는 두께가 3mm 정도 되는 두꺼운 판지를 사용하였다. 표제는 흰색 비단에 붓으로 쓴 첨지를 붙여놓았다. 본문은 탁본한 것을 9행 22자에 맞추어 잘라 붙이고, 옅은 청색 종이로 테두리를 하였다. 배접지는 빳빳하고 매우 두터운 장지를 사용하였다. 책수는 2절이다. 동일한 형태의 同書가 1부 더 있다.
체제 및 내용
 1783년(정조 7) 7월 하순에 정조(1752~1800)가 恭默閤을 수선한 것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탁본하여 만든 첩이다. 『일성록』을 살펴보면, 7월 19일에 날씨가 가물다가 당일 많은 비가 내렸다. 정조璿源殿에 참배를 한 후, 眞殿 뒤의 비가 새는 행각들을 수선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살폈다. 본 첩은 바로 여러 전각 중에 영조와 관련한 공묵합을 수선한 기록이다.
 첩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7월 하순에 有司들이 궁궐의 수리를 요청했는데, 정조는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식량이 곤궁하고, 비용이 많이 들것을 염려하여 미루자고 하였다. 단지 眞殿의 처마와 기둥의 비가 세는 곳만 수리하라고 하였다. 이후 신하들을 이끌고 직접 돌아보다가, 자신이 태어난 경춘전 동쪽에 있는 공묵합에 이르렀다. 공묵합영조정축년(1757, 영조 33)에 여막살이한 곳이므로, 기와가 부서진 것을 보고는 이곳을 수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더라도 사업을 크게 벌이지 말고 우선 훼손된 곳만 수리하게 시켰다. 그리하여 이 일을 기록하여 영조가 지은 지문 옆에 걸어둔다고 하였다. 이후 공묵합에 대한 회상을 적어놓았는데, 자신이 기묘년(1759) 세손으로 책봉받은 후에 항상 공묵합의 북쪽 협실에서 밤늦게까지 독서를 하였다고 한다. 그때 영조가 담박하게 독서만을 즐긴다고 칭찬하면서 ‘澹然’이라 당호를 내리고, 宮賓에게 ‘澹然窩記’를 지어 걸게 하였다. 수십 년 전의 일을 적어 감격스럽다고 하면서 마무리하였다.
 본 내용은 『홍재전서』 15권과 『열성어제』 45권, 『궁궐지』에 그대로 실려있다. 글씨는 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春秋館事同知經筵事藝文館提學 徐有隣(1738~1802)이 썼다. 서유린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達城, 자는 元德, 호는 潁湖, 시호는 文獻이다. 부친은 교리 徐孝修이며, 어머니는 李彦臣의 따님이다. 1766년(영조 42)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장원하고, 이듬해 司諫院正言을 거쳐 1772년승지가 되었으며, 다음 해에 대사헌을 지냈다. 1800년에 嶺南萬人疏로 인해 경흥에 유배 갔다가 병사하였다.
특성 및 가치
 정조는, 공묵합이 비록 正殿은 아니지만 영조와 관련한 중요한 곳이므로 훼손된 곳을 수리하게 하였다. 또 자신이 태어난 景春殿에 ‘誕生殿’을 써서 붙일 것을 명하였다. 본 첩을 통해, 정조가 자신과 관련한 궁궐에 대한 공간 인식과 이를 기록으로 남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宮闕志
列聖御製
日省錄
弘齋全書
장서각소장 탁본자료해제Ⅱ-帖裝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집필자
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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