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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당(宣化堂)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087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서기순(徐箕淳) 서(書)
작성시기    :
척년미상(拓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132.5×113.4cm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절(折) 37.4×25.7㎝ /
청구기호    :
K2-4370
M/F번호    :
MF35-486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관찰사가 정무를 펴는 감영의 편액인 ‘宣化堂’ 대자 글씨를 탁본한 후 첩으로 만든 것이다.
서지사항
 표제가 ‘宣化堂’으로 서명은 표제를 따른다. 표지 장황은 감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으며, 선장이 아닌 호접장 형태로 書背를 감싸놓았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백지에 ‘宣化堂’이라는 대형 글자를 탁본한 것이다. 본문의 장수는 총 3장이고, 형태는 먼저 가로로 위아래 1절씩 접고, 이후 세로로 좌우로 1절씩 접었으며, 다시 가로로 1절씩 접는 형태로 해놓았다. 지질은 楮紙를 사용하였는데, 두껍지는 않지만 힘이 있는 종이이다. 인장은 ‘堂’ 자의 좌측 아래에 ‘徐箕湻印’이 같이 탁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현판으로 쓸 목적으로 쓴 ‘宣化堂’이라는 대자 글씨를 탁본한 후에 접포식으로 접고, 다시 이를 첩장한 것이다. 글씨의 크기는 세로 125cm, 가로 110cm 정도로서, 대자 글씨임에도 필획의 線質이 웅건하고 포백이 정밀하면서 字形이 안정된 명필로 볼 수 있다. ‘堂’ 자 아래에 ‘徐箕湻印’이 같이 탁본되어 있으므로, 글씨를 쓴 사람이 徐箕淳(1791~1854)임을 알 수 있다. 본 탁본 자료가 장서각에 소장된 것으로 보아, 경기감영이거나 국왕과 관련한 행궁에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선화당이란 조선시대에 각 도의 감영에서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政廳을 말한다. ‘宣化’란 『漢書』 56권 「董仲舒傳」에 나오는 ‘承流宣化’의 줄임말로, 風敎를 받들어 숭상하고 백성에게 은택을 베풀어 교화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 선화당은 각 도에 있었는데, 경상도 대구, 전라도 전주, 충청도 공주, 강원도 원주, 황해도 해주, 함경도 영흥, 평안도 평양 등에 있었다. 경기감영서울수원에 있었는데, 서울서대문 밖에 있었다.
 글씨를 쓴 서기순은 조선 후기 청백리로 이름난 인물이며, 본관은 대구, 자는 仲裘, 호는 梅園, 시호는 淸文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이조참의 대사성, 이조참판을 거치고 전라도관찰사,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850년대제학, 이듬해에 병조판서, 1853년이조판서까지 올랐다. 그 외에 판의금부사 등의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서기순의 가문은 자신을 포함하여 누대에 걸쳐 相臣과 大提學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즉 현조는 영의정을 역임한 徐宗泰(1652~1719), 고조는 좌의정 徐命均(1680~1745), 증조는 영의정 徐志修(1714~1768), 조부는 대제학 徐有臣(1735~1800), 부친은 대제학 徐榮輔(1759~1816)이다.
특성 및 가치
 지방의 고을 수령이 해당 지역을 잘 다스려야 하는 임무를 지녔다면, 관찰사는 위로 임금의 뜻을 잘 받들고 아래로 고을 수령들이 임무를 잘 수행하는지를 감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선화당이란 바로 관찰사가 정무를 펴는 실질적인 공간이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곳이다. 본 첩은 글씨가 좋으면서 書者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장서각소장 탁본자료해제 Ⅱ-帖裝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집필자
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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