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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영지(矗營誌)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47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787 / 정조 11년
형태사항    :
크기: 25.5×16.5cm / 판본: 복사본(複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6.9×14.2㎝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5123
M/F번호    :
MF35-6692
기록시기    :
1787~1789年(正祖 11~13)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87~1789년(정조 11~13) 진주에 소재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의 營誌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矗營誌’이고 표지에 직접 묵서하였다. 표지는 옅은 황색이고, 같은 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선장으로 장정하였다. 複寫本이며 앞부분에 삽도 ‘矗營圖’가 있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雙邊, 有界, 12行24字이며, 책수는 1冊 11張이고, 종이는 洋紙를 사용하였다. 제2면인 원표지의 이면 상단에 인장 ‘藏書閣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표제는 ‘촉영지’이고 내제는 ‘嶺右兵馬節度營’이다. 편찬체제는 右兵營地圖, 建置沿革, 官職, 城池, 樓臺, 公廨, 倉庫, 進貢, 古蹟, 題咏, 先生案, 軍額, 錢穀糶糴, 冊板, 土官, 吏奴等, 船隻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矗營은 경상도우병영에 해당하는 晉州兵營을 일컫는 용어이다. 진주는 임진왜란 때 큰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1603년(선조 36)에 경상도우병영이 창원에서 이전하였다. 책머리에 삽입된 ‘우병영지도’에 내·외성의 경관이 묘사되어 있는데, 내성에 주요 시설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진주성은 1605년(선조 38)에 성곽을 증축하면서 내성과 외성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내성에 병마절도사의 집무 공간인 觀德堂을 비롯하여 拱辰堂, 彰烈祠, 忠烈祠, 中營 등이 묘사되어 있고, 외성에 연못과 독립 건물이 그려져 있다. 성곽을 따라 구북문, 신북문, 남문, 矗石樓, 서문, 鎭南樓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촉석루 아래에 論介가 적장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든 장소로 전하는 義岩이 있다.
 ‘건치연혁’에는 兵使 李守一창원에서 병영을 옮기면서 진주목사를 겸임하게 된 사실과 1635년(인조 13)부터 목사와 병사를 분리하여 둔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관직’에는 무관 종2품 병마절도사, 무관 종3품 虞候, 醫生 審藥을 적고, 모두 2년마다 교체한다고 하였다. ‘성지’에는 내성, 외성, 옹성의 규모와 將臺, 砲樓, 壕池 등을 기록하였다. ‘누대’에는 4장대인 待變樓, 回龍樓, 矗石樓, 鎭南樓를, ‘공해’에는 觀德堂, 拱辰堂, 守城中軍廳, 養武堂, 山城寺 등을, ‘창고’에는 주요 軍倉과 보관 물품을 수록하였다. ‘진공에’는 정월 초하루, 단오, 동지, 誕日에 바치는 물품의 종류와 개수가 적혀 있다. ‘선생안’에는 선조 대에 병사를 지낸 蘇潝을 시작으로 金誠一, 金時敏, 鄭起龍 등을 거쳐 정조李延弼까지 총 169명의 부임·이임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군액’에는 본영, 좌영장, 별중영장, 우영장, 독진, 상번군 소속 군병의 인원을 자세히 수록하였다. ‘토관’과 ‘선척’의 내용은 없다.
특성 및 가치
 진주 병영의 성곽, 공해 구성, 관원과 소속 인원, 재정 현황 등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營誌이다. 선생안에 1787~1789년兵使를 지낸 李延弼도 기록되어 있어 정조 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사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여지도서』 ‘경상우도병마절도영’에 수록된 지도와 내용이 유사한 점으로 보아 이를 참고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편, 『輿地圖書』, 탐구당, 1979.
양보경, 『朝鮮時代 邑誌의 性格과 地理的 認識에 관한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7.
집필자
류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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