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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건지산도형(全州乾止山圖形)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072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화자미상(畵者未詳)
작성시기    :
[1899] / 광무 3년
형태사항    :
크기: 61.2×49.6cm / 판본: 지본채색(紙本彩色)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26.5×19.0㎝ /
청구기호    :
K2-4348
M/F번호    :
MF35-172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9년(광무 3)전주이씨 시조 司空公 李翰의 묘역을 중심으로 전라북도 전주 건지산의 형세를 그린 산형도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全州乾止山圖形’이다. 가로 2절, 세로 2절로 된 접포식 장정이다. 필사본으로 四周三邊 烏絲欄의 채색 지도이다. 全葉은 61.2×49.6cm, 광곽은 57.3×44.7cm, 折은 26.5×19.0cm이다.
체제 및 내용
 건지산태종 이래로 군사를 징발하여 사냥을 하던 곳이었다. 이후 1525년(중종 20) 전라도관찰사 홍경림전주는 祖宗이 정기를 받은 풍패지향으로 지형이 남쪽은 높고 북쪽은 허하여 바닥 기운이 분산되므로 鎭山의 이름을 ‘乾止山’이라 하고 나무를 가꿀 것을 치계하였다. 1634년 이 산에 禁標를 세워 나무를 베거나 밭으로 경작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숙종 연간 이후 궁방전에서 건지산 일대를 折受하려 하였으나 저지되었고, 1771년(영조 47) 鶴林君 李焴건지산은 왕실 시조의 옷과 신을 소장한 곳으로 廟宇를 옮겨 세울 것을 상소하였으나 영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1782년(정조 6) 정조건지산의 훼손을 막기 위해 전라도관찰사에게 乾止山, 坤止山과 성 안의 형세를 그려 올리도록 하였다.
 1899년(광무 3) 1월 고종은 詔令을 내려 선대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전주 건지산에 제단을 쌓고 단호를 ‘肇慶壇’이라 하고 비석을 세워 관리할 것을 명하였다. 시조 사공공의 묘소 터는 분명치 않아 제단만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조경단의 공사 비용은 민폐를 없애기 위해 內帑庫의 돈 5,000元을 내려 보내 宗正院에서 주관하여 조성하였다. 1899년 6월 형태만 남은 사공공 묘소의 封墳을 개축하기보다 加土하여 그 자리를 표시하도록 하였다.
 화면은 전주 건지산을 중심으로 사공공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疑墓所가 乙坐向으로 있고, 그 좌우측에 1899년 세워진 조경단과 비각이 있으며, 묘역 입구에는 홍살문이 서있다. 묘 앞에 정자각을 세우지 않은 것은 풍수로 인해 계단 아래 정자각을 세울 만한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묘역 우측의 龍首洞 일대에 조성된 재실은 사공공의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묘역을 중심으로 붉은 선으로 왕래하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다. 묘역 아래쪽 德津池 옆의 勝金亭李時在(1785~1852)가 지은 정자이다.
 산형은 수채화식의 밝은 청록색으로 건지산을 묘사하였고, 산봉우리와 고개를 중심으로 조성된 소나무는 진한 녹색으로 강조하였다. 이는 화면 좌측에 “靑色遠山, 綠色局內山”이라 하여 청색은 원산, 녹색은 내산의 局部를 묘사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兜率峯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아래 덕진지로 흐르고, 그 수계의 표현은 일반적 지도에서 파란색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담회색을 사용하여 탁한 느낌을 준다. 도솔봉을 정점으로 산 아래 大止洞까지는 土城이 연이어 조성된 것을 묘사하였다.
특성 및 가치
 장서각 소장 〈조경단비각재실도형〉과 함께 고종 연간 조선 왕실의 祖宗 숭모 사업의 일환으로 전주 건지산에 조성된 사공공 이한의 묘역과 조경단, 비각, 재실의 위치와 규모를 자세하게 살필 수 있는 산형도이자 회화식 지도이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高宗實錄』 권39, 36년 7월 11일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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