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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종어필목조대왕구거유지(高宗御筆穆祖大王舊居遺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고종(高宗) 어필(御筆)
작성시기    :
[1899] / 광무 3년
형태사항    :
크기: 33.0×20.3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반곽(半郭) 25.7×15.1cm /
청구기호    :
K2-3898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고종 연간 穆祖舊居遺址에 세워진 지문을 탁본하여 만든 帖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표지 장황은 국화 무늬가 붉은 실로 수놓아진 녹색 비단을 사용하였다. 3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며 책등을 감쌌던 면직물은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표지 제첨은 흰 비단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체제 및 내용
서첩의 본문은 비석을 탁본하여 편집한 형태로 되어 있다. 모두 篆書로 되어 있으며 ‘御筆穆祖大王舊居遺址’라고 되어 있다. 글자는 한 면에 한 행으로 2字씩 편집하여 구성하였다. 옛날 유지임을 표시하는 비석이었으므로 별다른 陰記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1899년(광무 3) 고종은 宰臣 李重夏(1846~1917)를 三陟에 보내어 삼척의 두 묘소를 奉審하도록 하였다. 봉심을 마치고 돌아온 이중하삼척의 두 묘소는 태조 대 당시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고 하여 失傳된 사실을 한탄하였다. 그러다 세종 대 두 묘소를 찾아서 성종 대 봉축을 하였고 강원감사 정철삼척부사 허목이 기록한 것을 증거 삼아 묘소를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허목삼척부사에 부임하여 삼척의 읍지인 『陟州誌』를 남겼는데 그 序文에 조선 초기 목조의 외가인 皇妣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으며 또한 목조의 皇考와 황비의 분묘가 이곳에 있으며 또한 목조가 살았던 옛 집터가 또한 古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린다고 기록했다.
이에 따라 고종은 여러 논의 끝에 목조의 潛邸 터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滋滿洞活耆洞을 모두 인정하고 이곳에 각각 선조를 찬양하는 表識를 남겨두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결국 삼척은 묘소 가까이에 돌을 떠낼 수 있고 돌의 품질 또한 쓸 만한 곳이 많다고 하여 삼척에 비석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특성 및 가치
 고종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양한 추숭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4代 조상의 비석을 다시 세우면서 자신이 직접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쓰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고종의 행장 및 여러 기록들을 통해 고종이 손수 일을 처리하면서 선대와 관련된 제반 사업을 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穆祖舊居遺址碑의 제작과 탁본 작업은 그러한 사례를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許穆, 『記言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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