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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종어필덕릉비(高宗御筆德陵碑)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고종(高宗) 필(筆)
작성시기    :
1901 / 광무 5년
형태사항    :
크기: 34.9×23.3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3897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1년(광무 5) 穆祖의 陵인 德陵의 비문을 탁본하여 장황한 帖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同書 2部가 있는데, 보상화와 당초무늬가 수놓아진 녹색 비단으로 표지를 장황하였다. 11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며, 책등을 표지와 같은 비단으로 감쌌다. 표지 제첨은 흰 비단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拓印이 고르지 못하다.
체제 및 내용
목조태조 이성계의 高祖父인 李安社를 말한다. 서첩의 표지 제목은 高宗御筆德陵碑이며 서첩의 앞부분은 篆書로 大韓穆祖大王德陵이라고 되어 있다. 다음에는 楷書로 쓴 陰記가 편집되어 있다. 1行에 4字씩 3行을 한 면으로 편집하였다. 다만 첫 행은 한 자를 올려 5字로 구성하였다.
음기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주삼척에 世居하였으며 고려의 조정에 입사를 하였고 원나라 때에는 천호 겸 다루가치로 임명되었다. 1274년(고려 원종 15) 3월 10일에 승하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장례는 경흥부의 성남쪽에서 지냈다. 태조가 즉위하자 존호를 ‘목조’로 추증하였고 능은 ‘덕릉’이라고 지칭하였다. 태종 대에는 존호를 다시 추상하였다. 마지막으로 비문은 1901년 5월에 세웠다고 기록했다.
목조전주에서 대장군을 지냈던 이양무상장군 이강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전주에서 살았으나 지역 관원과의 갈등으로 삼척으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왜구를 막아내기도 하였다. 갈등을 벌인 관원이 이 지역 안찰사로 오자 이번에는 원산으로 이주하였다. 고려에서 그를 병마사로 삼아 원나라를 막도록 하였다. 원나라에 항복한 이후에는 斡東으로 이주하였고 천호 겸 다루가치에 임명되었다.
1897년(광무 1)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태조의 직계 4조에 대한 황제 추숭 작업이 진행되었다. 황제의 지위에 따라서 능묘의 제반 시설을 정비하였다. 그 과정에서 추숭 작업이 뒤따랐다. 의정이었던 尹容善(1829~?)과 장예원경 李容稷이 논의한 결과 함흥영흥에 관원을 파견하여 각종 시설을 점검하였다. 당시 개수 작업에 참여한 인물은 함경남도관찰사 金宗漢(1844~1932)이었다.
특성 및 가치
 고종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양한 추숭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의 비석을 다시 세우면서 자신이 직접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쓰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德陵碑의 제작과 탁본 작업은 그러한 일면을 잘 보여준다.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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