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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종어필건원릉비(高宗御筆健元陵碑)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고종(高宗) 어제어필(御製御筆)
작성시기    :
1900 / 광무 4년
형태사항    :
크기: 32.7×22.0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3896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0년(광무 4) 태조 이성계의 능인 健元陵의 비문을 탁본하고 장황하여 만든 帖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高宗御筆健元陵碑’이다. 同書 3部가 있다. A본과 C본은 능화 무늬가 수놓아진 녹색 비단으로, B본은 푸른색 종이로 표지를 장황하였다. 17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며, 모두 책등을 각각 비단과 면직물로 감쌌다. 표지 제첨은 흰 비단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체제 및 내용
고종이 직접 지은 비문이다. 서첩의 앞부분은 篆書로 ‘大韓太祖高皇帝健元陵’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한 면에 한 글자씩 배치하여 편집했다. 비석의 앞부분 탁본을 재편집한 것이다.
書帖의 뒷부분은 楷書로 쓴 비석의 뒷면 음기를 탁본하여 편집한 것이다. 1行에 4字씩 3行을 한 면으로 편집하였다. 다만 陰記의 첫 행은 한 글자를 올려 5字로 편집하였고 본문은 隔字를 하였다. 음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조 이성계1335년(고려 충숙왕 4) 10월에 탄생하였고 1392년(태조 1) 7월에 고려 좌시중 배극렴 등이 고려 정치가들의 문란함을 보고서 의를 세워서 이성계를 추대하고 개성 수창궁에서 보위에 올랐다. 4대왕을 추존하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1394년(태조 3) 태조가 60세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가고 11월에는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종묘를 세웠다. 1398년(태조 7) 정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1408년(태종 8) 5월에 승하하였다. 왕으로 7년, 상왕으로 10년을 재위하였다. 장례는 양주 검암산에서 치렀다. 1683년(숙종 9) 시호를 올리고 1872년(고종 9)에 존호를 추상하였다. 1899년(광무 3) 11월에 시호를 고황제로, 묘호를 ‘태조’로 하고 원구에 배사하였다.
비문을 고쳐 세우게 된 것은 1900년(광무 4) 6월 고종이 직접 표석을 고쳐 세우는 일이 미처 완성되지 못했다고 하여 健元陵, 齊陵, 貞陵, 隆陵, 健陵, 仁陵, 綏陵에 대하여 표석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추숭의궤도감에서 거행하도록 지시한 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표석의 전면과 음기는 고종이 직접 쓰겠다고 조령을 내렸고 일은 추숭의궤도감에서 진행하였다. 이 일환으로 健元陵碑가 제작되었다.
특성 및 가치
 고종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양한 추숭 사업을 진행하였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서 역대 국왕에 대한 추존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종은 추숭의궤도감에서 각 능에 있는 표석을 다시 세우는 일을 추진하였고, 비문은 직접 지음으로써 황제로서 선대와 관련된 제반 사업에 정성을 다하는 모범을 보여주곤 하였다. 이는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는 황제국으로 격상시키려는 추존 작업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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