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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종어제활기동비문(高宗御製活耆洞碑文)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고종(高宗) 명찬(命撰), 조병필(趙秉弼) 봉칙서(奉勅書)
작성시기    :
1899 / 광무 3년
형태사항    :
크기: 33.3×21.8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3894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9년(광무 3) 목종의 유허지인 삼척 活耆洞에 세운 비문을 탁본하여 장황한 帖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米色의 면직물로 표지를 장황하였으며, 5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나 책등을 감싼 면직물은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표지 제첨은 흰 비단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체제 및 내용
1899년 고종은 宰臣 李重夏(1846~1917)를 三陟에 보내어 삼척의 두 묘소를 奉審하도록 하였다. 봉심을 마치고 돌아온 이중하삼척의 두 묘소는 태조 대 당시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고 하여 失傳된 사실을 한탄하였다. 그러다 세종 대 두 묘소를 찾아서 성종 대 봉축을 하였고 강원감사 정철삼척부사 허목이 기록한 것을 증거 삼아 묘소를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허목삼척부사에 부임하여 삼척의 읍지인 『陟州誌』를 남겼는데 그 序文에 조선 초기 목조의 외가인 皇妣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 또한 목조의 皇考와 황비의 분묘가 이곳에 있으며 목조가 살았던 옛 집터가 古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린다고 기록했다.
이에 따라 고종은 여러 논의 끝에 목조가 潛邸한 터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活耆洞을 인정하고 이곳에 각각 선조를 찬양하는 表識를 남겨두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결국 삼척은 묘소 가까이에 돌을 떠낼 수 있고 돌의 품질도 쓸 만한 곳이 많아 삼척에 비석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1899년 7월 11일 활기동의 비문은 朴箕陽(1856~1932)이 써서 올리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그를 삼척의 活耆洞碑文書寫官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11월이 되자 고종은 詔令을 통해 삼척 활기동의 비석 앞면은 고종이 직접 써서 내려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탁본된 비문을 보면 글은 趙秉弼(1835~1908)이 썼다고 되어 있다.
서첩의 본문은 비석을 탁본하여 편집한 형태로 되어 있다. 본문은 楷書로 되어 있으며 첫 행은 御製로 시작하며 두 번째 행부터 한 행을 5字로 편집하였고 隔字를 시행하는 대신 한 자를 올려 6字를 구성하도록 했다. 한 면은 모두 4行으로 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고종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양한 추숭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4代 조상의 비석을 다시 세우면서 자신이 직접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쓰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고종의 행장 및 여러 기록들을 통해 고종은 선조와 관련된 제반 사업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穆祖舊闕遺址인 活耆洞碑文의 제작 역시 그러한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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