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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종대왕홍릉지(高宗大王洪陵誌)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민영규(閔泳奎) 찬(撰), 윤용구(尹用求) 서(書)
작성시기    :
1919
형태사항    :
크기: 36.2×28.2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8.4×22.6cm /
청구기호    :
K2-3893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19년 前議政 閔泳奎가 지은 고종洪陵 誌文을 탁본하여 장황한 帖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高宗大王洪陵誌’이다. 同書 2部가 있으며, 표지 장황은 斜格卍字가 있는 황색 종이에 弘絲를 사용하여 6침안 康熙綴로 裝幀하였다. 표지 제첨은 흰 종이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拓印 상태는 고르지 못하다.
체제 및 내용
서첩의 본문은 洪陵 誌文을 탁본하여 이를 그대로 書帖으로 제작하였다. 誌文의 碑文은 한 행을 18字로 구성하였으며 한 면은 모두 8행으로 되어 있다. 탁본을 그대로 서첩으로 제작하였으므로 본 서첩 또한 비문과 동일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종의 尊號를 모두 기재한 다음 1918년 12월 19일 고종의 몸에 이상이 생겨 다음 날 경운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고종의 나이 67세였다. 이후 다시 그의 존호를 올리고 묘호는 ‘고종’으로 정하였다. 1919년 2월 홍릉에 합장을 하였다. 홍릉양주에 있다. 홍릉에는 이미 명성황후가 이장되어 있었다. 고종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로 1852년(철종 3) 7월에 태어났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대왕대비의 가르침을 받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에 맞게 재도를 바로잡고, 大號를 올려 제도를 바꾸었고 원구단에 배향을 하여 제사를 지내는 등의 일을 하였다. 어려운 시절을 만나 여러 번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고종은 묵묵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정치를 구하는 데 부지런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조차 없었다.
誌文은 前議政 민영규(1846~1923)가 짓고, 尹用求가 썼다. 민영규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여흥이다. 부친은 의정부대신 민경호다. 1875년(고종 12)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고속 승진을 하였다. 갑오개혁으로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자 면직되었다가 이후 궁내부대신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을사조약 이후에는 의정대신에 올랐고 대동학회에서 활동하였다. 한일병합 이후에는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賜金을 받았다.
특성 및 가치
 본 지문은 일제강점기 誌文의 찬술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純宗實錄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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