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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이왕전하비문(故李王殿下碑文)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찬자미상(撰者未詳)
작성시기    :
1929
형태사항    :
크기: 59.1×35.2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청구기호    :
K2-3892
M/F번호    :
MF35-486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29년 4월에 세워진 순종裕陵 비문을 탁본하여 장황한 帖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故李王殿下碑文’이다. 표지 장황은 구름과 七寶 등이 수놓아진 米色 비단을 사용하였으며 紅絲를 사용하여 6침안 康熙綴로 裝幀하였다. 표지 제첨은 흰 비단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또한 본문의 가장자리는 녹색 면직물로 둘러 장황하였다.
체제 및 내용
여기서 말하는 李王은 純宗을 말한다. 식민지 시기였기 때문에 ‘순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왕’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던 듯하다. 서첩의 앞부분은 篆書로 純宗孝皇帝純明孝皇后祔左裕陵이라고 되어 있다. 비석의 앞부분을 탁본하여 편집한 것이다. 한 면에 두 글자를 상하로 배치하였다.
본문의 뒷부분은 비석의 뒷면 음기를 탁본하여 편집해 수록하였다. 楷書로 되어 있으며 한 행에 8字로 구성하였고 한 면은 3행으로 배치하였다. 음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종1874년(고종 11) 탄생하였으며 1875년(고종 12)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897년에는 황제국이 됨에 따라서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1907년(융희 1)에 황제로 즉위하였다. 1910년(융희 4)에 李王이 되었으며 1926년에 승하하였다. 장지는 양주홍릉 왼쪽이었다. 나이는 53세였다. 뒷부분의 내용은 왕후로 채워져 있다. 순명효왕후 민씨의 탄생, 세자빈 책봉, 태자빈 책봉, 승하 등이 순종과 동일한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장지는 양주 용마산이었다가 뒤에 유릉에 합장되었다.
탁본 내용의 마지막에는 1929년 4월에 비문을 세웠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누가 썼는지는 적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본 서첩 제작을 위한 탁본은 1929년 4월 이후에 시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순종1874년 고종명성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성왕후순종 이외에도 몇 명의 자식을 더 낳았으나 순종만 유일하게 장성하였다. 이듬해에 왕세자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는 왕태자로 올랐고 1897년(광무 1)에는 황태자가 되었다. 1907년 고종헤이그 밀사 파견 문제로 강제 퇴위하자 순종이 제위에 올랐고 연호를 隆熙라고 하였다. 하지만 정식 군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으로 인하여 ‘창덕궁 전하’라 불리기도 하였다. 순종은 건강이 좋지 않아 이복동생 중 나이가 어린 영친왕을 황태자로 봉하였다. 1910년 이후에는 순종은 모든 권한을 잃고 ‘이왕’이라 불리며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1926년 4월 심장마비로 승하하였고 고종홍릉 근처 유릉에 안장되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 왕실의 장례문화는 국왕의 격에 맞추어 진행되었으나 일제는 조선의 왕실문화는 이전보다 더 낮추어 유지하고자 하였다. 본 자료는 이러한 일제의 왕실문화 왜곡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純宗實錄』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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