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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경빈김씨묘지(慶嬪金氏墓誌)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각현(金珏鉉) 봉칙찬병서(奉勅撰幷書)
작성시기    :
1907 / 광무 11년
형태사항    :
크기: 35.3×19.6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3890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7년(광무 11)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묘지명을 탁본하여 장황한 帖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慶嬪墓誌文’이다. 표지 장황은 능화 무늬가 수놓아진 녹색 비단을 사용하였다. 4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며, 책등 역시 표지와 같은 비단으로 감쌌다. 표지 제첨은 흰 비단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본문 중간 상단에 서명을 적은 첨지가 붙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문은 大韓 慶嬪 墓志로 시작한다. 楷書로 작성되어 있으며 한 면은 8行으로 한 행에 19字로 구성되어 있다. 국왕 및 왕비에 대한 일체의 지칭은 행을 달리하여 한 글자를 올려 別行으로 편집했다. 본문 중에서는 隔字를 하였다.
본 묘지문은 묘지명을 작성하게 된 경위, 경빈의 일생 등을 산문의 형식으로 정리한 序와 그 내용은 韻文으로 정리한 銘으로 되어 있다. 序는 경빈이 후궁으로 간택된 경위를 서술했다. 1847년(헌종 13) 헌종의 祖母였던 순원왕후의 제안으로 후사를 보기 위하여 후궁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뒤이은 헌종의 사망으로 후사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어 경빈의 일생을 기록하였다. 경빈김장생의 9세손으로 김장생송준길이 태어난 방과 같은 방에서 출생하였던 사실, 순원신정 두 대비를 잘 모셨던 사실, 중궁이었던 효정왕후와도 화목한 관계였다는 사실 등 경빈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고종신정왕후의 양자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는데 경빈고종과 좋은 말을 나누었고 고종은 이에 敬禮하였다고 하여 고종과 친밀한 관계였음을 묘지명을 통해 드러냈다. 두 대비가 사망한 이후에는 궁궐을 나가 경빈궁에서 은거하는 삶을 살았고 일체의 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일생에 대한 총평으로 仁德을 두루 갖추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으며 여러 인물들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비문은 자신이 경빈의 친족으로 喪葬을 책임진 바 있으며 집안에 어른이 안 계셔서 부득이 金珏鉉(1864~?) 자신이 맡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김각현광산 김씨경빈과 같은 항렬의 친족이었다. 1891년(고종 2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경빈의 묘는 휘경원을 천장한 구역 서쪽 산자락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 자리를 선택한 인물이 바로 김각현이었다.
특성 및 가치
 장서각에 소장된 본 묘지명 이외에도 김학진이 撰하고 서긍순이 書寫한 『慶嬪金氏墓碑文』의 탁본 서첩이 소장되어 있다.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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