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경빈김씨묘비문(慶嬪金氏墓碑文)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학진(金鶴鎭) 봉칙찬(奉勅撰)
작성시기    :
1907 / 광무 11년
형태사항    :
크기: 36.6×21.7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3888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7년(광무 11) 헌종의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의 묘비를 탁본한 書帖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표지 장황은 斜格卍字 무늬가 있는 푸른색 종이를 사용하였다. 뒤표지 이면에 1971년의 再裝 기록이 있다. 12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며, 책등은 선홍빛의 면직물로 감쌌다. 표지 제첨은 흰 종이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체제 및 내용
표제는 ‘慶嬪金氏墓碑文’이다. 서첩의 앞부분에는 篆書로 쓴 大韓慶嬪金氏之墓가 있으며 한 글자가 한 면을 차지하도록 편집하였다. 비석의 뒷면에는 楷書로 쓴 陰記가 편집되어 있는데 1行에 9字로 한 면에 5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왕과 왕비, 빈을 지칭하는 경우에는 한 글자를 띄어 隔字를 했다. 撰者와 書者는 한 글자를 낮추었다.
음기에는 비문의 작성 경위가 기재되어 있다. 경빈 김씨1907년 사망하였는데 이장한 徽慶園의 옛 자리에 장례를 지냈다. 왕명에 따라서 金鶴鎭(1838~1917)이 碑記를 작성하였다. 경빈 김씨김장생의 9세손으로 헌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후사는 없었다. 순원·신정·효정의 三殿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또한 경빈 김씨는 이들을 모시는 데에도 정성을 다하였다. 60여 년간 궁중에 머물면서 부덕을 지킴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찬자인 김학진과 서자인 徐肯淳(1860~?)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경빈 김씨(1832~1907)는 김재청의 딸이었다. 김재청은 딸이 간택될 당시 主簿에 있었으니 훗날 대사성이 되었고 황해감사를 지냈다. 경빈김장생송준길이 태어난 방에서 출생했다고 하여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하였다. 순조의 비였던 순원왕후에 의해 1847년(헌종 13)에 궁에 들어갔으나 후사는 없었다. 헌종의 中宮이었던 효정왕후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종의 명에 따라 장례는 순조 연간에 있었던 和嬪의 장례에 준하여 진행하였다. 화빈정조의 후궁으로 역시 후사 없이 사망했다. 휘경원정조의 후궁인 綏嬪 朴氏의 능원으로, 유빈순조의 私親이었다. 그래서 경빈의 장례 절차는 고종의 특별한 관심으로 우대를 받았다고 한다. 경빈의 묘는 遷葬한 휘경원 서쪽 산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특성 및 가치
 장서각에는 이 자료 이외에 15折로 편집된 탁본 서첩인 『慶嬪墓碑』가 있다. 경빈에 대한 자료는 본 비석 탁본 이외에도 고종의 명으로 편찬된 묘지명이 전하는데, 장서각에는 『慶嬪墓誌文』의 탁본이 첩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
집필자
박범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