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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헌종대왕경릉지(憲宗大王景陵誌)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윤정현(尹定鉉) 찬(撰), 이계조(李啓朝) 서(書)
작성시기    :
1849 / 철종 즉위년
형태사항    :
크기: 33.5×20.9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3885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49년(철종 즉위) 헌종의 능인 경릉을 조성할 때 尹定鉉이 지은 誌石을 탁본하여 粧潢한 帖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표지 장황은 국화 무늬가 붉은 실로 수놓아진 녹색 비단을 사용하였다. 15折 帖裝으로 裝幀하였다. 표지 제첨은 흰 면직물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제1면에 諱字는 붉은 비단으로 가려놓았다.
체제 및 내용
헌종익종의 아들이면서 순조의 손자였다. 어머니는 조만영의 딸 신정왕후이다. 왕비는 김조근의 딸 효현왕후이며 계비는 홍재룡의 딸 명헌왕후이다. 1830년(순조 30)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834년(순조 34) 순조가 죽자 어린 나이에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첨정하였으나 1841년(헌종 7)부터 親政을 하였다. 1849년(헌종 15) 6월 6일 23세의 어린 나이로 후사 없이 승하하여 그해 10월 28일 봉릉하였다.
경릉조선 역대 왕릉의 象設 배치 가운데 쌍릉 제도를 연장하여 변형시킨 유일한 사례로 3基를 옆으로 나란히 배열하였으며 난간석도 모두 연결시켰으며 曲墻 주위를 3면으로 마감하여 능침 앞의 魂遊石만 1좌식 배치하였다.
지석의 제작 과정은 『헌종대왕국장도감의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 의궤에는 지석의 石材는 藍浦水沈石을 사용하였고 크기는 禮器尺을 사용하여 모두 24장의 지석을 제작하였다. 매 장에 10行, 매 행에 平行 17字를 새겼다. 좌변 모퉁이에 憲宗大王景陵誌라고 썼고 아래 모퉁이에는 共二十四張이라고 새겼다.
지문은 당시 병조판서였던 윤정현(1793~1874)이 지었다. 그는 이조판서를 지낸 윤행임의 아들이었다. 학문적 조예와 가문적 배경으로 급속히 승진하여 宰臣의 반열에 올랐다. 經史에 박식하고 문장으로 명성이 높았고 특히 碑文에 능했다고 한다.
지문의 내용은 윤정현이 지문을 쓰게 된 이유, 백성에 대한 헌종의 인애와 은택을 칭송하는 내용, 친정 이후의 선정을 한 사례들, 단엄한 성품과 검소한 덕성, 학문에 대한 선호 등의 내용을 서술하였다. 지문의 내용은 『憲宗實錄』『列聖誌狀通紀』, 윤정현의 문집은 『梣溪先生遺稿』 권2에 그대로 남아 있다.
특성 및 가치
 景陵誌文은 19세기 이후 왕릉에 埋安된 誌石이 대형의 板石에서 크기가 작은 규모로 바뀌는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또한 의궤의 기록을 통해 일정별 제작 과정과 실물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지문의 내용 및 서체, 새김의 기술, 탁본과 장황 형식 등을 통해 왕실의 장례 문화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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