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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건릉천봉지문(健陵遷奉誌文)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심상규(沈象奎) 찬(撰), 김상휴(金相休) 서(書)
작성시기    :
1821 / 순조 21년
형태사항    :
크기: 34.7×25.3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3883
M/F번호    :
MF35-195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21년(순조 21) 정조의 능을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천장하고 효의왕후를 부장할 때 새긴 誌文을 탁본하여 粧潢한 帖이다.
서지사항
同書 2部가 있는데, 서명은 B본의 표지 서명을 따랐다. A본의 표지 서명은 ‘健陵誌文’이다. 표지 장황은 국화 무늬가 수놓아진 붉은 비단을 사용하였다. 29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나 책등을 감싼 면직물은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표지 제첨은 흰 비단 위에 墨書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체제 및 내용
건릉은 원래 장헌세자현륭원 동쪽에 있던 것을 1821년 현재의 위치인 현륭원 서쪽 구릉으로 천장하여 효의왕후를 함께 부장하였다. 이때 陵號도 함께 정해졌다. 지문은 심상규(1766~1838)가 찬술하였고 글은 김상휴(?~1827)가 書하였다.
1821년에 있었던 건릉의 천봉에서 제작된 지석은 모두 59장으로 『건릉천봉도감의궤』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탁본은 모두 57면으로 되어 있다. 지석의 한 면을 10行으로 배열하여 18字씩 새겨 원석을 탁본한 그대로 粧潢한 것이다.
지문은 遷陵을 하게 된 연유에 대한 기록, 지문의 찬술관이던 심상규 자신이 지문을 찬술하게 된 경위, 정조에 대한 인적 사항 및 胎夢,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일화와 天性에 대한 것들이 기술되어 있다. 한편 정조의 대리 청정 사실과 영조에 대한 효심, 국왕으로 겪게 되었던 여러 가지 일들, 정조의 개인적인 학문적 저술, 武衛와 관련된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왕비 김씨에 대해 서술하였다. 모두 1만 2,000여 자로 꽤 장문의 지문이다. 지문의 내용은 『列聖誌狀通紀』 권24에도 수록되어 있다.
정조건릉은 애초에 장헌세자의 묘인 현륭원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이때 천장하게 된 것은 처음의 장지가 지대가 낮고 평이하여 聖人을 오래 모셔둘 곳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우려 섞인 의견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1821년 이장 작업이 시작되었고 현륭원의 동쪽에서 서쪽 구릉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천장을 할 당시에 효의왕후도 함께 附葬하였다. 이때 지문은 정조효의왕후 兩位의 것을 합하여 짓도록 하였다.
지문을 찬술한 심상규는 당시 대제학으로 정조의 知遇를 받아 ‘象奎’라는 이름과 ‘稚敎’라는 字를 하사받았다. 1789년(정조 13)에 병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1809년(순조 9)에는 홍문관직제학에 올랐다. 문장과 시문은 내용이 깊고 치밀하며 간결하고 자연스럽다고 이름이 높았다. 지문은 돈녕부사였던 김상휴가 썼다. 지문의 서체는 획이 가늘고 단정하며 정교하게 새겨진 상태였다.
특성 및 가치
 본 지문은 19세기 이후 왕릉 지석이 대형 板石에서 크기가 작은 규모로 바뀌는 변모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된다. 또한 의궤의 기록을 통해 일정한 제작 과정과 실물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고, 지문의 내용 및 서체와 새김의 기술, 타본과 粧潢의 형식 등 왕실의 國葬과 관련된 장례 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장서각소장 탁본자료해제Ⅱ-첩장본』, 2005.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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