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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정종대왕건릉지(正宗大王健陵誌)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윤행임(尹行恁) 찬병서(撰幷書)
작성시기    :
1800 / 순조 즉위년
형태사항    :
크기: 35.9×20.4cm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3881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00년(순조 즉위) 尹行恁(1762~1801)이 찬한 정조健陵 誌文을 탁본하여 장황한 帖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健陵誌’이며 표지 제첨은 흰색 면직물 위에 墨書하였는데, 서명의 밑에 ‘尹行恁撰幷書’라는 기록이 있다. 米色의 면직물로 표지를 장황하였으며, 22折 帖裝으로 裝幀하였으나 책등을 감싼 면직물은 떨어져 나갔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拓印하였다. 제28면, 29면에 본문을 먹으로 지운 흔적이 있다.
체제 및 내용
서첩의 본문은 誌文을 새긴 비석을 탁본하여 별도의 편집이 없이 그대로 수록하였다. 비석은 有明朝鮮國正宗大王健陵誌라는 제목을 시작으로 윤행임이 지은 지문을 그대로 수록하였다.
지문의 본문은 한 행에 18字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면은 7행으로 제작되었다. 지문은 총 42면이다. 지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지 13년이 되는 해에 현륭원수원부 화산으로 옮겼으며 이후 한 해에 한 차례 이곳에 행차를 하였다. 24년째 되던 해에 병을 얻어 창경궁 정침에서 승하하였다. 윤행임 자신이 정조의 기록을 맡으라는 명을 받아 정조의 업적을 기리게 되었다. 정조영조의 손자이자 장헌세자의 아들이었다.
지문에는 『국조보감』, 『궁원의』, 『명의록』, 『오륜행실』, 『추서경선』, 『군려대성』, 『항례합편』, 『대전통편』, 『오경백편』, 『경사자집수권』, 『송사진전』 등 정조가 관여하여 편찬한 서책을 나열하였다.
또한 윤행임정조의 업적을 소개하면서 정조는 성인이었으며 斯道의 정체를 밝혀냈다고 보았다. 정조가 한 일은 복희, 신농, 문왕, 무왕이 했던 일이며 정조가 한 말은 공자, 맹자, 정자, 주자가 한 말이었다고 드높였다. 또한 남들의 귀와 눈에 배어 있는 天德, 王道만을 추려 뽑아 굉장한 유자이면서 賢哲한 국왕이라고 평가했다.
건릉 지문을 지은 윤행임남원 윤씨1782년(정조 6) 문과에 급제하여 초계문신에 선발되어 규장각에 들어갔다. 그는 時派로 辟派의 탄핵을 받아 유배를 가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에는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순조 연간에는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실록청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한 이후에는 신유박해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서학을 신봉했다는 탄핵을 받아 참형을 당하였다.
특성 및 가치
 19세기 초 정조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정조 연간 시행된 여러 가지 국가사업을 통해 조선의 제도가 일신한 측면을 볼 수 있다면 순조 연간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정조 연간의 유산이 재평가되는 하나의 지점을 지문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집필자
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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