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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계하장본존안(啓下狀本存案)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왕직 실록편찬회(李王職 實錄編纂會) 초록(抄錄)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9.0×19.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5×15.6㎝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627
M/F번호    :
MF35-498~49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4년(고종 31) 7월 21일 이후 전국의 지방관이 올린 狀啓와 이를 啓下한 이왕직 실록편찬회에서 초록한 문서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啓下狀本存案’이다. 표지 장황은 청색 종이에 육각형의 벌집 문양이 있는 것이며, 흰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표제는 흰색 題簽을 붙여 붓으로 적었다. 앞표지 우측에 ‘開國五百三年七月’을 적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雙邊과 上內向靑魚尾이며, 판심 하단에 ‘李王職實錄編纂用紙’가 찍힌 200자 원고용지를 사용하였다. 본문의 글씨는 楷書로 적어놓았다. 지질은 뒷면이 비치는 얇은 洋紙이다. 책 수는 33장 1책이다. 인장은 앞표지 이면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이왕직은 일제강점기 이왕가와 관련한 사무를 일체 담당하던 기구이다. 1926년 순종이 사망하자 이왕직실록편찬회가 설치되어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이 자료도 실록편찬 작업의 일환으로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1894년(고종 31) 7월 21일 이후 전국 각지의 지방관이 올린 장계와 이를 계하한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시기의 자료로는 장서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啓下各衙門狀本存案』(K2-3626)과 『啓草存案』(K2-3625)이 있다.
본문은 장계의 연월일과 보고 내용, 계하한 날짜순으로 구성되었다. 장계를 올린 지방관에는 경기·충청·전라·경상·황해·강원·함경·평안 등 팔도 관찰사함경북도 경성 이북 지역을 관장하던 按撫使, 開城留守, 廣州留守, 春川留守, 東萊府使, 仁川府使, 豐德府使, 統制使, 全羅右水使, 黃海水使, 三南廉察使, 兩湖宣撫使, 嶺南宣撫使 등이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개항 이후 인천경기 지역을 통한 외국 선박의 출입 사실과 서양 병선과의 접촉 사실 등이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병선 1척이 外洋으로 나갔다는 인천부사의 보고, 영국일본 선박 각 1척이 들어왔고, 일본 선박 1척은 나갔으며, 일본군 650명이 서울로 왔다는 경기감사의 보고, 에스파냐 병선 1척과 일본 병선 2척이 들어왔고, 일본 商船 3척이 나갔으며, 일본군 425명이 서울로 왔다는 경기감사의 보고 등이 있었다. 청일전쟁 기간 일본군의 이동 사실을 세세하게 보고한 것도 특기할 점이다. 일본군 대장이 병사 3,000명, 중장이 1,000명을 이끌고 평양으로 간 일과 보병중좌가 7,000명을 이끌고 주둔한 일 등 일본군의 동향을 황해감사가 지속적으로 보고하였다. 한편, 당시 조선 사회를 뒤흔들던 동학무리에 대한 보고도 계속되었다. 조정에서는 관찰사의 보고 외에도 별도로 선무사와 염찰사 등을 파견하여 동학무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 밖에도 지방관의 인사 관련 보고, 民擾에 대한 보고, 부세 상납 관련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이 문서는 대내외적으로 긴박한 시기였던 1894년(고종 31) 조선 사회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이다. 동학농민군의 동향과 조선 정부의 정보 수집 수준, 청일전쟁 시기 일본군의 규모와 이동방향, 외국 兵船과 商船의 출입 사실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啓草存案』(K2-3625)
『啓下各衙門狀本存案』(K2-3626)
『啓下狀本存案』(K2-3627)
집필자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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